[단상] 전두환의 용치(勇治), 김대중의 덕치(德治)
-SPn 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8월15일 토요일, 현충원 육영수여사 서거 35주기 추도식 취재를 마치고 집에와서는 '일요일까지는 김대중 대통령 등에 대한 단상을 꼭 써보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지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전에도 그랬지만 현정권의 노 대통령에 대한 비판과 압력이 상상외로 보였던 터라, 죽은 권력에 인간적으로 그럴 필요까지 있는가, 반문하고 싶었는데 결국 노 전 대통령을 대변하는 글이 아니라해도 어긋난 권력의 충성경쟁에 하고 싶은 말을 한마디도 못한 상태에서 서거하시고 말았다.
김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이번 입원이 결코 쉬운 투병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언날 지방 신문사 대표로부터 '(김 전 대통령 건강이) 어찌 될 것 같습니까?'라는 물음에 나는 '이번이 마지막 입원같네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후 1주일 뒤부터 김영삼 전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 전두환 전 대통령, 8.15일에는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까지 병문안을 했었다. 이는 예견했던 것처럼 병원측의 소견이 악화되는 쪽으로 판명이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 중 전두환 대통령은 문병에서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전두환 대통령에게 사형을 선고 받았던 김대중 대통령은 화해와 용서와 나눔으로 집권기간을 일관했다. 그의 얼굴을 보면 혁명가나 투사가 아니라 그냥 잘생기고 마음씨 좋고 천진한 동네 아저씨로 보인다, 적어도 내 눈에는.
전라도가 고향인 나는 70년대 초 대통령 선거개표방송을 한 잠도 주무시지 않고 듣고 계신 아버지를 기억한다. 작은 형이 월남서 사 온 라디오에 귀를 대고 '대중이가 돼야 하는디...' 하시며(공교롭게도 음력 6.29일 - 윤달이 낀 관계로 오늘 저녁이 아버님 제사를 모시는 날이다). 이후 나는 고등학교를 경상북도 구미 - 박정희 대통령이 설립한 학교에 진학했다. 아버지의 꿈이 김대중 대통령이었지만 76년 입학식 때 나와 아버지가 서 있었던 곳은 박 대통령이 출생한 땅이었다. 어쩜 당시 아버지는 청년기의 나만큼 혼란을 겪으셨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고등학교를 마치고 79년 광주 상무대(보병학교)에서 군생활을 시작(5년후 중사로 제대)했다. 그 해 박 대통령이 서거하셨고, 80년 봄에는 전두환 대통령의 지휘를 받는 계엄군으로 5.18현장 외곽에 투입되었다. 시민군과 계엄군, 민주와 독재, 김대중과 전두환이 첨예하게 충돌하고 있는 고향땅에서 시민군과 민주화와 김대중쪽과는 달리 군복에 M16소총과 480발의 탄환, 수류탄 두 발을 차고 있었던 것이다. 벌써 30여년 전의 일이다.
지금은 내가 양 쪽을 다 알 것 같다. 그리고 시대는 늘 그것을 원해왔다. 지금 생각하니 해방이후 대한민국의 큰 획을 그으면서도 정통성을 갖는 지도자는 박정희 - 전두환 - 김대중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 뒤를 잇는 지도자를 찾는 것은 아직도 진행형같다.
생각해보면 호,불호를 떠나 박정희 대통령이 이뤄 놓은 경제기반 위에 전두환 대통령 때가 중산층이라는 국민은 가장 살기 좋았다. 부정과 비리, 방만한 기업에 대한 강력한 통제로 국가의 발전이 서민 경기로 순환되게하는 역할에 충실했다. 연구해 볼 가치가 있지만 우리나라 경제가 급팽창하고 고용이 최대화하면서 선진국 수준으로 진입하게 된 것도 그 시기였던 것 같다. 자유주의 경제모델에서 홍역을 치른 미국이 공기업 국유화에 나선 점을 자유방임형태의 우리들은 주목해야 할 것이다.
역사는 정말 아이러니하다. 당 시대 인권에서 최대의 피해를 봤던 사람이 후일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오늘(2009.8.18) 서거하셨다. 의식이 들면서 양 극단에 서 있었던 전두환, 김대중 대통령을 굳이 비교한다면 한 분은 용감하게 통치하였고 한 분은 넉넉하게 나라를 다스렸다는 생각. 그래서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한 뜨거운 가슴이 없이는 실패한 지도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우리는 오늘 또 얻을 수 있었다.
2009년은 전직 대통령을 두 분이나 잃은 해. 부디 영면하시기를 빕니다.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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