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포토] 산그림자가 아름다운 과천에서 본 관악산(연주대 불꽃바위 등)의 여러 날, 여러 시간대의 모습
-SPn 서울포스트, (마이 네임 이스) 량기룡(梁奇龍) 기자
통상적으로 높은 산에서 내려다 볼 때, 능선과 봉우리 그림자가 계곡과 능선을 잘 구분해 준 풍경이 펼쳐진다. 그러나 과천 서쪽에 방벽을 이룬 관악산은 평소 오후가 되면 그 장관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 첩첩이, 켜켜이 쌓인 산그림자가 하루 노동의 피로를 싹 지워줄 때야 난 평온을 되찾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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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천에서 본 관악산의 여러 날, 여러 시간의 모습 ⓒ20180409-0706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그러니까, 봄날 벚꽃잎이 흩날리던 때부터 초여름 장마까지, 7월 어느날 비 온 다음엔 하늘색과 구름색, 산의 색깔이 몹시 아름다워 보였다.
병자호란을 겪고 청나라로 끌려간 김상헌의 시,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에 운을 띄워,
안냐세여 관악산님, 또뵙네요 연주대님!
잘계세여 관악산님, 또뵐께요 연주대님!!
하며 중앙동 현장을 오갔다. 북한산도 우이동이나 방학동에서 항상 올려다 보이지만, 주거밀집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산은 관악산일지 싶다.
산이 이정표 역할을 한 것은 어릴적 제암산(帝岩山 807m 전남 보성, 800m급 산 중 한반도 최남단에 위치), 학창사절 금오산(金烏山 976m 경북 구미, 900m급으로 주변 산 중 독보적임)이다. 유난히 그들을 우러러 경외하며 생활했다. 금오산은 낙동강에 인접한 우리 학교에서 제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사진을 남겨두지 못한 아쉬움, 금오산을 올랐고 제암산은 오르지 못했다. 지금도 어딜 가면 산야를 두리번거리며 산세를 감상하는 버릇이 있다. 성철스님의 법어처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고 생각해 버리고 말아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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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동네 뒷산인 관주산길에서 본 전남 보성 제암산 ⓒ20140805 서울포스트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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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방] 길 위의 '풍경'① - 전국투어길에서 본 경북 구미 금오산 ⓒ20120415 서울포스트자료 |
관악산에 유난히 눈길이 간 것은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지형적 아름다움과 풍수지리상 한반도에 강한 영향을 행사한 불의 산이라는 상징도 있지만, 항상 피로를 덜어주고 휴식을 준 특별함 때문이었다. 산의 기운 때문이어서인지 몰라도 현장의 매우 위험한 상황도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최근에야 알았지만 '관악산 연주대는 국가상징축(국가중심축)*'이라고 한다. 그간 일제때 남산의 신사터에서 2010년 광화문광장이 복원되면서 북한산-광화문-관악산 으로 바뀌었단다. 이런 사실을 몰랐던 2014년, 필자는 파주 감악산에서 북한산 비봉의 북한산비 각도를 가늠하며 경복궁과 관악산을 연계해 그려 본 적이 있다.[▲ 아래 서울포스트 20141004 기사 : 감악산에서 본 지형구도. 경기5악에 속한 감악산과 관악산은 비봉,인왕산을 두고 일직선을 이룬다. 이는 한양(경복궁)과 북한산과 인왕산이 구체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시기에 누군가가 비석을 세웠을 가능성도 엿보인 대목이다. ⓒ자료이미지]
[* (역사문화로 만나는 광화문 광장 - 코리안스피릿 2010.8.29 기사 일부 참조) : ...우리 민족의 국가 상징축도 동시에 회복됐다. 북한산~광화문~관악산에 이르는 우리의 국가상징축을 알게 된 일제가 우리 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총독부~광화문~남산신사로 상징축을 왜곡한 바 있다.
우리의 선조들은 조선시대 한양(지금의 서울)을 계획하면서 북한산과 관악산으로 이어지는 생명축 선상에 정궁인 경복궁을 지었다. 그리고 경복궁의 정문이 광화문 앞에 주작대로인 육조거리를 조성하는데 광화문에서 130m 지점에서 동쪽으로 3.75도 휘어진 도로를 만든다. 이는 관악산의 화기로부터 경복궁을 보호하려는 비보(裨補)의 한 수단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1910년 일제가 조선총독부~남산 신사로 이어지는 그들만의 상징축을 새로 만들면서 우리의 국가상징축이 훼손되었다. 광화문광장과 광화문의 복원은 이렇게 왜곡되었던 우리의 역사공간을 100년여 만에 되찾는다는 큰 의미를 담고 있다..]
[* ([녹색시론] 광화문광장과 매장 문화재 - 조경뉴스 2018.6.28 기사 일부 참조) : ..일제강점기에 국가 중심축이 남산 신사로 향한 것을 광화문 광장을 조성하면서 관악산 연주대로 바로 잡은 것이 불과 10여년 밖에 되지 않았다..]
하여간 조선과 대한민국은 현재까지 관악산 불기운을 제압하기 위해 별 짓을 다하고 있다. 연주대에 물웅덩이를 팠고 광화문을 비틀어 놨고 남대문에 숭례문 글자를 세로로 붙이고 그 옆에 저수지(남지)를 팠고 이명박,오세훈 때는 광화문광장에 분수대를 놓는 등. 그래도 경복궁과 청와대는 바람 잘 날이 없다.
자, 그럼 필자가 경외스럽게 의미를 부여하며 담은 관악산 연주대 불꽃바위 를 감상하시라, 때론 정면에서 다리를 꼬고 담배를 꼰아 물고 찍기도 했지만. (龍)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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