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노트] 여행학개론 -여행이란 심,유,관,학,식(心.遊.觀.學.食)
-SPn 서울포스트, 나종화 객원기자
2017.03.29자료: 한국고전문화연구원은 한자어나 고어로 씌어진 우리나라의 주옥같은 고 문헌들을 현대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로 번역하여 우리 역사의 맥을 잇고자 하는 목적으로 정부나 기관의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회원들의 자발적 참여만으로 유지하는 순수 민간 학술단체이다.
연구원에서는 회원들을 대상으로 저명한 학자나 문학인등을 초청하여 문화강좌를 실시하고 있는데, 3월 25일 전주대학교에서 열린 이번 강좌에서, [ 여행학개론 ] 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맡는 영광을 누렸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경청해 주셨다. 회원님들 대다수가 교수님들을 비롯한 역사와 여행에 조예가 깊은 분들이라서 그야말로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격이었지만 ‘진정성 있는 강의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고 평가를 해주시니 참으로 몸둘바를 모를 따름이었다.
긴 내용에 실하지 않은 알맹이라도 나종화의 [여행학개론]에 관심을 갖는 단, 한분이라도 계신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지식을 공유한다는 차원에서 그날 강의 전문을 정리하여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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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문화연구원 회원 여러분 뵙게 되서 반갑습니다. 여러모로 부족한 제게 존경하는 한국고전문화연구원 회원님들께 여행을 주제로 말씀을 드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것을 대단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선운산 투구봉에서 도솔암을 바라보는 산객들
여행은 생활입니다
어떤 조사에 의하면, 자신의 주요한 취미활동으로 여행을 꼽는 인구의 비중이 가장 높다고 합니다. 아마도 교통수단 이용자 중 50%는 여행목적으로 집을 나선 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여행은 대중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수익에서 고정생활비를 차감한 가처분 소득의 50% 상당을 여행 경비가 점유하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본 적이 있는데, 그렇다면 여행은 단순한 취미가 아닌 우리의 생활속으로 깊숙하게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벌떡 일어나면 세상이 바뀐다는 민중의 염원을 담은 화순 운주사 와불
생존본능에 우선한 인류의 여행본능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가 현재 우리들 수준의 사고와 언어적 지각을 갖게 된 것은, 약 7~8만년 전부터인 것으로 인류학자들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지구대의 식생이 풍부한 사바나에서 비교적 평화롭게 살던 인류는 6만5천년전 부터 돌연 이동을 시작합니다.
그들중 한 무리가 약 5 만년전, 메소포타미아, 인도, 인도차이나 반도 그리고 인도네시아를 거쳐 호주로 건너간것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계 지도에서는 좁은 해협처럼 보이지만 그곳은 실로 광활한 바다입니다. 당시엔 그 바다건너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 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정말 보잘 것 없이 작은 뗏목에 몸을 싣고 오세아니아로 건너가는데 성공합니다. 아마도 무수한 도전에 따른 실패와 시행착오의 결과였을 것입니다. 참으로 경이적인 모험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약 4 만년,전 또 다른 무리가 페르시아 북부를 출발하여 해발 5000미터에 가까운 피미르 고원을 지나 텐산 산맥을 넘습니다. 아직 빙하기가 한창이라서, 그 지역은 두터운 눈과 얼음으로 덮혀있어서 지금보다 훨씬 더 추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열사의 고비사막을 건너 중국대륙으로 들어가고 그들중 일부는 몽고를 지나 우리나라로 들어옵니다. 바로 우리들의 조상입니다.
완벽한 장비를 갖춘 오늘날에도 목숨을 걸어야 할정도로 무척 버거운 여정입니다. 게다가 이미 그곳에 터를 잡고 있었던 네안데르타인등의 고대 원시인류들과의 갈등이나 전쟁도 피할 수 없을 것이고, 맹수의 공격과 질병의 위협도 있었을 것입니다.
현생인류가 감행했던 이 무모한 여행은 생존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운 [죽음의 여정]이었습니다. 그들중 초인적인 체력과 정신력을 지난 일부가 극적으로 생존하여 우리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인류는 죽음을 무릅쓰고 이런 여행을 감행했을까요. 어쩌면 인류의 DNA에는 철따라 대륙을 이동하는 철새들처럼 [여행본능]이 내재되어 있는지 모릅니다. 그것이 오늘날에도 여행을 생활로 받아드리며 우리를 길 위에 서게 만드는 것 이구요. 만약 제 가설대로 여행이 본능이라면, 우리에게 여행은 피할 수 없는 운명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보기로 하는 것은 여행을 해야만 우리의 마음이 충족된다면 기왕에 여행 동일한 시간, 동일한 비용으로 동일한 공간을 여행하는데 있어서,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유용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며, 그것을 탐구하는 것이 [ 여행학 ] 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986년 터키 보스프러스 해협을 지나면서
여행이란 心. 遊. 觀. 學, 食
강의에 즈음하여 여행이란 주제를 여러분들께 어떻게 전달 해 드리는 것이 좋을것인지에 대해 아무리 고민해봐도 가닥이 쉽게 잡히지 않더라구요. 그런데 지난주 일본 출장때 전철을 타고 가면서 창밖을 보다가 여행사 입간판이 스쳐고 지나가는 것을 얼핏 봤느데, 거기에 [ 여행이란 心. 遊. 觀. 學 食] 이렇게 씌어 있었습니다.
‘ 와 이거다’ 싶었습니다. 이부분을 제 나름대로, 여행이란 깨닫고, 놀고, 보고 , 배우고, 먹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하고 그 의미를 곱씹어 보았습니다.
이것이 오늘 제가 여러분께 전달해드리고자 하는 본론입니다.
마음을 평화롭게 만들어 주었던 곳, 화순 세량지
心, 여행은 수행입니다
좋은 흙을 골라서, 잘 빻아, 채로 걸러서, 잘 반죽해서, 모양을 만들어, 응달에서 말린 다음, 초벌 굽기를 하고, 다시 유약을 발라 두 번째 굽는 조심스럽고, 정성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한개의 그릇이 완성됩니다. 이것을 인격을 완성시켜 나가는 과정에 비유하여 옛 사람들은 도야(陶冶)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완벽한 인격체로 거듭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소망이겠지만, 그 과정이 너무 지난하기 때문에 현자가 되기란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 회원님들께서 엄청난 열정을 쏟아가면서 학문을 연마하시는 것 역시 그런 인격도야의 한 방편이겠지요. 그것을 더 쉬운 말로 수행(修行)이라고 표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도의 정신세계를 이룩한 선현들이 남긴 지혜의 산물인 고전(古典)을 읽으며 내것으로 체화시키는 것, 사색과 명상을 통해서 각성코자 하는 것, 그리고 종교에 귀의 하는 것 모두가 큰 의미에서 수행의 방편일 것입니다.
그 중 많은 이들이 여행을 가장 효과적인 수행법으로 꼽는 것에 대해서 별 이견은 없을 것입니다. 여행을 하게 되면, 일상이라는 익숙함의 끈이 풀리는 대신, 의식이 강해지고, 그 표면이 확장됩니다. 쉽게 말해서 잡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어지는 것이죠. 이를테면 선불교에서 말하는 마음 챙김과 순간에 깨어있음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거지요.
그동안 먹고 사는데 쫓겨 잔뜩 경직되어 있었던 의식이 말랑말랑 해지면서 각성(覺性)하기 쉬운 상태로 바뀌게 됩니다. 원효대사 같은 고승대덕들도 대중의 열렬한 추앙과 존경과 안락한 삶을 뒤로하고 구름처럼, 흐르는 강물처럼 천하를 방랑하는 가난한 운수납자의 삶을 기꺼히 택한 것은 바로 그것때문일 것입니다. 동양 최고의 현자로 일컫는 공자께서도 14년이라는 오랜 세월동안 드넓은 중국대륙을 떠도는 주유철환(周遊撤還)을 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도 무려 40일간을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는 죽음의 사막에 자신의 맨몸을 내던졌습니다.
물론 보편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런 고행에 가까운 여행을 권하는 것은 넌센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행이 갖는 가장 위대한 가치인 수행이라는 측면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단 한 나절만이라도 가벼운 행장을 꾸려 이곳 전주에서 가까운 모악산 주변이나 천호성지를 토닥토닥 걷는 것만으로도, 그 전후의 삶이 놀라운 차이를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주변사람들이 여행을 통해서 삶이 바뀌는 경우를 봅니다. 마음이 바뀌면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그러면 운명이 바뀐다고 하지 않습니까. 여행은 우리의 운명을 긍정적으로 또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최고로 유용한 수단인 것입니다.
여러명과 함께 왁자지껄 떠들썩하게 즐기는 여행일지라도 여행은 수행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만으로도 남다른 효과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수행이라 하여 마음에 부담을 갖거나 진지해질 필요는 절대 없습니다. 거꾸로 부담감과 진지함을 덜어내어 몸과 마음을 더욱 가볍게 만들어야 합니다. 다만 가끔씩 생각만 해주면 됩니다. 여행은 수행입니다.
遊. 인생 뭐 있어? 한바탕 놀다 가는 거지
그럼요. 여행자의 마음은 가벼워야 합니다. 그리고 즐겁고 유쾌해야 합니다. 크게 보면 인생이 놀이이듯 여행만큼 재밌는 놀이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놀이를 꼭 여럿이 함께 해야 할까요? 아뇨. 여행이라는 놀이도 혼자서도 얼마든지 즐길 수 가 있습니다. 자연과 내가 하나 되는 여행놀이의 최고 경지인 몰아일체(沒我一體)는 오히려 혼자서라야만 가능하니까요.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멧돼지 우글거리는 산등성이를 홀로 걷는 산꾼들을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그들은 결코 특별하지 않습니다. 혼자 노는 법을 터득하면 여러분들도 그렇게 될 수 가 있으니까요.
저도 가끔, 밤새도록 산길을 걷는 무박산행을 하는데, 설악산 마등령처럼 가파른 산길을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오를 땐, 정말 몇 번이고 그만 두고 싶을 만큼 힘겹습니다. 그걸 참고 진득하게 걷다보면 어느 순간 몸이 고통에 적응을 하면서,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마라톤에서 처럼 몸이 데드포인트(dead point) 이른바 사점(死點)을 통과한 상태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힘든 상황을 잘 견뎌내고 있는 자신이 대견해지면서 야릇한 흥분감에 휩쌓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산봉우리에 올라 내 노라 하는 고봉들이 발 아래로 내려다보이고 어슴프레 드리워진 여명을 밝히며 해가 둥실 떠오르는 장면을 바라보면 이루 말할 수 없는 환희가 온 몸을 휘감습니다. 산꾼들은 그것을 마운틴 오르가즘이라 표현하는데 이렇게 기막힌 놀이가 어디있겠습니까.
하여간 여행을 통해서 노는것은 암벽등반,고산등반,페러글라이딩,스쿠버다이빙,급류타기 같은 스릴 만점의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방법에서부터 여유자적 트레킹을 하거나, 드라이브를 하거나, 시설 좋은 리조트에서 안락하게 온천을 즐기는 방법까지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합니다. 여행중에 친구와 수다에 빠지거나 우리가 좋아하는 음주가무도 여행 중에 하는 것이 훨씬 더 재밌고 즐겁습니다. 다만 요즘 우리들의 여행에 있어 지나칠 정도로 그 것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데 약간의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새로운 여행놀이를 하나씩 더 추가해 보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여행이 훨씬 더 풍성하고 재밌어질 것입니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여행 놀이를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주제를 정해놓고 사진 찍기
요즘은 스마트폰 성능이 워낙에 좋아서 전 국민이 사진작가나 다름없습니 다. 대부분 인물 사진을 찍는데, 거기에 더하여 자기가 선호하는 주제를 정하여 특별히 더 정성을 기울여 찍어보십시오. 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입니다. 예를 들면 고건축의 단청, 문양, 다리, 탑, 고목, 정자 이렇게 특정한 주제 한 두 개만 정하시면 됩니다.
꽃이름, 나무이름 배우기
이 놀이는 마치 통장에 돈이 쌓여가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재밌습니다. 핸드북처럼 나와 있는 식물도감을 서점에서 구입하여 갖고 다니면서 주변에 있는 나무나 꽃부터 하나씩 익히고, 또 스마트폰에 담아 보십시오. 이때,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고, 한 번에 두 개씩만 익히다 보면 한 3~4년 지나면 어느덧 식물 박사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감동의 회호리 바람을 선사했던 관음사 소조 관음상
觀, 감동! 여행이 주는 최고의 선물
저는 지금까지 북한산을 300번 이상 오르내렸습니다. 첨에는 정해진 코스를 따라걷는 선(線) 개념의 산행에 충실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멋진 풍경이 보이는 뷰 포인트( view point )를 찾아가는 점(點) 개념의 산행으로 패턴을 바꾸었습니다. 그랬더니 너무 익숙해서 하찮게 보이던 북한산이었는데 보면 볼 수 록 아름답게 보이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북한산에 오르게 되면 수 없이 ‘ 와 멋지다 ’를 외치게 됩니다.
저는 그런 방식의 산행을 [힐링산행]이라 정의하고 저서의 제목도 그렇게 정했습니다. 일반적인 여행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이나 역사적인 걸작품들을 만나게 되면 [ 와 멋지다 ]와 함께 감동이 터져 나와야 [힐링여행]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힐링산행]이든 [힐링여행]이든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자신이 능동적으로 그런 감동의 산물들을 찾아 나서야하고 둘째 자신의 감동의 파장이 쏟아져 들어 올 수 있도록 감성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 몸은 스스로에게 대단한 선물을 안겨줍니다. 바로 행복호르몬이라 일컬어지는 세르토닌 입니다. 감미로운 음악을 들을 때, 귀여운 아가의 잠자는 얼굴을 바라볼 때, 그리고 대자연의 경이로움이 눈앞에 펼쳐져 보일 때 자기도 모르게 [ 감미롭다. 예쁘다. 아름답다 ] 이런 탄성과 함께 뇌에서는 세르토닌이 분비된다고 합니다.
세르토닌에는 감정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면서 동시에 손상된 면역체계를 일시에 복원시켜 주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암세포를 박멸하는데 탁월한 효과를 나타낸다고 하네요.
제 경험을 소개하겠습니다. 지난해 우연히 곡성에 있는 관음사를 찾았다가 그곳에 안치되어 있는 소조관음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관음사는 6.25 전쟁통에 소실되어 폐찰이 되다시피 한 상황이었는데, 부산에 살던 한 할머니 꿈에 관음상이 현몽하여 그 할머니가, 광주에 있는 고물상에 다 부서지고 불두만 남아 있는 관음상을 발견하여 다시 관음사에 모시게 되었다는 신비한 내력을 갖고 있는 불상입니다. 실제 금박은 타 없어지고, 애초에 토기장이가 빚어놓은 생얼 그대로의 모습이라서 오히려, 그 표정과 미소가 선연하게 드러나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순간에 온몸을 휘감던 전율과 감동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네요.
하여간 앞으로 여행을 하실 때, 행복호르몬 세르토닌으로 뇌 샤워를 하실 수 있도록 여러분의 입에서 [와 멋있다. 와 예쁘다. 와 아름답다 ]라는 감탄사가 자주 터져 나오기를 기원드립니다.
요즘 우리나라 시대상과 맞물려 많은 생각을 안겨주었던 도쿄 메이지 신궁
學,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미국인 거래처 임원과 함께 울진 원자력 발전소 출장중에, 그 분의 요청으로 하루는 짬을 내어 경주로 갔습니다. 먼저 불국사로 가자고 하더군요. 불국사에 도착하자, 불국사 홍예 앞에 서더니 아예 가방을 내려놓고 대학노트를 꺼내더군요. 그의 노트에는 청운교 백운교 사진, 그림이 스크랩 되어 있고 온갖 메모들이 빼꼭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한 나절 내내, 그곳에 머물면서 계속 메모를 이어나가더군요. 점심을 먹고 다시 불국사로 되돌아오더니 이번에는 다보탑과 석가탑을 또 한나절 내내 감상하는 것입니다. 그걸 바라보면서 얼마나 지겨웠는지 모릅니다. 돌아오면서 까지 원더풀, 액설런트를 연발하며 감동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무엇을 그렇게 세심하게 살펴보았습니까. ’
그는 ‘ 나는 고대 건축물의 구조와 구성을 주로 보는데, 청운교, 백운교, 다보탑과 석가탑은 미학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고, 그 안에는 책 수십권 분량의 지식이 녹아 있어, 그걸 건성으로 보고 돌아가는 것이 너무 아쉽다. ’ 고 대답했습니다. 저도 역사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답사를 무척 즐기는 편인데, 우리나라 문화재를 그토록 몰입해서 감상하는 그의 태도를 보니 부끄럽더라구요.
이것은 학구적 취미를 가진 어느 여행자의 특이한 사례지만 제가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열정과 호기심을 품고 공부한 만큼 보이고, 본 만큼 공부가 된다는 점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이후 저도 흥미를 자극하는 장소에 가기 전에 그곳에 대한 문헌을 뒤져 본다든지 나름 공부를 하고 가게 되면 그 공간이 품고 있는 시간의 숨결까지 느껴지는 귀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도 한 번 경험을 해보시렵니까. 전주 가까운 곳 익산에 옛 백제 도읍지였던 왕궁터가 있지 않습니까. 그곳을 한번쯤은 다녀 오셨겠지만, 공부를 하신 다음에 다시 한 번 가시게 되면, 그곳에 서려 있는 1400년의 역사가 피부로 와 닿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여러분들의 여행에 대한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놀라운 경험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곡성에서 복원중인 토란탕
食, 금강산도 식후경
우리나라를 구석구석 다니면서 가장 안타깝게 여기는 부분은 각 지역 고유의 맛이 급격하게 사라져 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십년 전만해도 국밥이든 백반이든, 그 지역 마다의 독특한 맛을 만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전국적으로 맛의 평준화가 이루어져 있어 그 고유한 맛을 만나기가 여간 힘들지 않습니다. 아마도 애초에 식당을 운영하던 어른들이 연로하시거나 작고하시고 그 지역 고유의 방식으로 재배되거나 자연에서 채집한 식재료들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곳 전주를 대표하는 비빔밥이나 콩나물국밥만 해도 그렇습니다. 맛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굳이 전주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전주 비빔밥을 먹을 수 있으니까요. 어쨌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중 하나인데 각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들의 깊은 맛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점은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다행이도 아직 고집스럽게 맛을 지키고 있는 음식점들도 상당수 남아 있고, 또 지역에서도 맛을 복원하려는 움직임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다시 지금보다는 훨씬 더 풍성한 고유의 우리맛들이 우리의 미각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
저 역시 우리 고유의 서민 음식들의 맛을 되살리고 지켜 나가는 일에 있어서 작은 힘이라도 보태기 위해서 뜻을 함께하는 이들과 여러가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그 운동이 본격적으로 진행하게 될 때 우리 한국고전문화연구원에 지원과 성원을 부탁드리겠습니다.
풍성한 여행을 위한 다섯 가지 팁
동일한 여행지, 동일한 시간, 동일한 비용을 쓰더라도 자신의 노력에 따라, 여행을 통해서 얻어지는 유익함은 천양지차입니다. 오늘 말씀드린 내용을 정리하면서 여러분의 보다 풍성한 여행을 위한 팁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첫째 여행의 목적을 구체화 시키고 거기에 관점을 집중하십시오.
둘째 여행지에 대한 조사를 통해 사전 여행 노트를 작성하고 다녀와서 보충 하십시오.
셋째 여행계획을 세울 때 시간은 30분 단위, 비용은 5000원 단위까지 치밀하게 배분하고, 숙소나 식당은 미리 예약을 해두십시오.
넷째 여행을 할 때는 감성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멋있다.] [예쁘다.] [아름답다] 같은 감탄사를 아끼지 말고 마음껏 즐기십시오.
다섯째 여행을 다녀온 다음, 기록과 여행사진을 체계적으로 정리해보시고, 블로그나 페이스북 같은 온라인 도구를 활용하여, 공유를 해보십시오. 그 감동의 여운이 더욱 오랫동안 지속됩니다.
장시간 경청해주신 회원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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