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미국 워싱턴포스트 가 워터게이트 로 닉슨 의 탄핵,하야를 주도했듯 서울포스트 가 왜 박근혜게이트 로 보고 하야,퇴진,탄핵에 적극적이었던가 (종합)
-SPn 서울포스트, (마이 네임 이스) 량기룡 기자
벌써 내가 광화문 광장에 선지 1년이 넘었다. 당시, 국민들은 나라가 평온하다고 생각했는지 외국인 관광객과 무심하게 오가는 사람들 뿐, 있다면 2년 째 세월호 유가족들 정도였다.
2016년 4월 5일, 내 행위가 낯설고 어색해 황무지같은 광야에 선 기분으로, 내가 미치지 않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외침'이었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다. '친박을 쪽박 내자'고 해도, 박정희대통령까지 욕먹이는 박근혜는 정치에서 손떼고 서민 손 잡아주라,고 해도, '박근혜 하는 꼴이 브라질 호세프 처럼 탄핵당할 것이다'고 해도,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서울포스트 창간10년 기획캠페인-대한민국 1인혁명]을 내걸고 '국민에게 희망을!' - Hope for the People! 이라는 슬로건 을 포함해 시간나는대로 광장을 비롯한 서울시내에서 피켓 을 들었던 시간들. 이미 이런 박근혜는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고 난 누구보다도 먼저 그를 싹 지워냈다.
현대사에서 감히 최초로 '혁명'이라는 말을 공공연히 쓴 것은, 군소 인터넷신문 없애겠다는 정부(문체부)방침에 항거도 포함돼 있다. 이 같은 내 행동을 스스로 '대한민국 1인혁명'으로 명명했으니, 솔직히 박정희 장군이 부패정권에서 5.16무혈혁명에 성공한 것처럼 그같은 사람이 나와서 이 정권(대한민국 정부가 아님)을 전복해 주기 바랬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국가와 민족'의 이념을 못이 박히도록 배운 내가, 그같은 사람이 나타나 그의 딸 박근혜를 몰아내야한다는 논리를 갖은 것은 단단한 모순이자 개인적으론 대혼란의 연속이었다.
그 이후 6개월 정도가 흐른 2016년 10월. 정치권에서, 교수들 사이에서 '박근혜는 정치에서 손 떼라'라는 선언이 이어졌다. 광장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더니 '박근혜 퇴진,하야,탄핵'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혁명'이라는 소리도 들끓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2016년 4월 나홀로 또라이 가 된 1년 후, 2017년 4월엔 정치,사회적으로 집단광기를 보이거나 박근혜 파면으로 앞당겨진 대통령선거에 접어들면서 수 많은 또라들 이 넘쳐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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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거리로 나가지 않으면 질식할 것 같은 지금 한국사회... 내가 미쳐가나보다! ⓒ20160408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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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4,5,6월, 서울포스트 창간10년 기획캠페인 - 대한민국 1인혁명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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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거리로 나가지 않으면 질식할 것 같은 지금 한국사회... 내가 미쳐가나보다! ⓒ20160405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2007년부터 박근혜를 '동서화합의 적임자'라고 지지했던 나는 2012년에도 캠프 비상근 특보(자문위원)로 활동하며 그를 대통령 만들기에 일조했다. 지난 수 년을 봐 오면서 - 고등학교 때부터 - 2012년엔 인터넷신문을 하는 언론인으로서 고민도 많았다. 의리를 지키며 그를 찍느냐, 국가와 민족을 위한 양심적 선택이냐의 그것이다.
간들간들 당선된 박근혜는 처음부터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화이트칼라보다 서민과 농어촌에서 박정희,육영수 여사 향수에 젖은 나이대가 그를 더 지지했음에도, 아버지가 못이룬 복지국가라더니 전혀 다른 방향이었고 주변을 채운 인물도 의혹투성이의 예상치 못한 사람들이었다. 막후정치에 국민화합은 커녕 친박산성 쌓기에 급급하고 호남홀대와 편가르기가 더 노골적이었다. 결정적인 것은 비서진 등 핵심에 국정원장 출신, 시간이 흐르며 검찰총장 출신을 포진 시켰다.
나의 예상이 적중돼 가고 있었다. '박근혜는 자신의 부정을 막기 위해 총칼을 쥔 권력를 둠으로써 국민의 입과 귀를 틀어막겠다'는 뜻, 그 부정은 최태민과의 관계가 주를 이룰 것이다,라는 예상이었다.
이미 김용환 고문과의 파행은 잘 알려졌다. 박근혜가 당선되고 그들이 만난 자리에서 김 고문이, "이제 최태민과의 관계는 뒤로하고..." 라고 말했다가, "그럴려고-그런 말 할려고 지지했어요"?라며 단절했다고 한다. 이전까지 하루가 멀다하고 자문을 교환했던 원로인데.
이후 세월만 가고 국민들 삶의 질이나 희망이나 나라 경제나 무엇 하나 시원한 것이 없고 꽉 막힌 박근혜집권이 계속 되었다. 세월호 사고도 어처구니 없지만 그것을 해결할 의지도 전혀 없이 변명과 윽박지름으로 민생은 도탄에 빠지고 정치권도 피폐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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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거리로 나가지 않으면 질식할 것 같은 지금 한국사회... 내가 미쳐가나보다! ⓒ20160405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나는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경북 구미 금오공고를 졸업했다. 설립자인 박정희대통령 친필 '金烏工業高等學校(금오공업고등학교)' 교명이 교문에 붙어있다. 재학중 RNTC 301학군단에서 군사교육을 받으며 건군29,30주년(1977년,78년) 여의도 국군의날 행사에 학도호국단으로 참여했다. 우리들의 충성스런 열병을 받았던 박정희 대통령과 영애 근혜양.. 이후 상무대 보병학교에서 기술하사관으로 군생활 시작, 5.18광주사태 외곽 경계부대로 나갔고 중사 전역했다. 전교사사령관(소준열 중장), 보병학교장(소장 김윤호)으로 통하는 지휘체제에서 보고 들은 5.18은 실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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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7년 10월1일, 건군 29주년 국군의날 여의도광장. 아래 금오공고 호국단의 분열식을 받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과 영애 박근혜 ⓒ유튜브자료캡쳐 |
사회 나와 직장생활을 하면서 많은 지역갈등도 경험했다. 수협은행(중앙회)을 퇴직하고 장사를 하면서 2006년부터 '서울포스트' - 인터넷신문을 하게 되었다. 한미준(한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창립멤버를 거쳐 고건 전 총리의 실용정책연대에 간여했다. 고전총리 불출마로, 2007년 박근혜를 지지하자는 세력에 합류하면서 '동서화합'을 기획했다.
세월이 오늘날까지 흘러보니 박근혜는 빈 껍데기에 불과했다. 얼굴은 무슨 약제로 포동포동 보톡스 를 겸하는듯 보였고, 서민들의 아우성을 뒤로하고 뻑하면 해외로 나갔다. 아랍권 모국가와는 투자사기에 걸려 결국 수 천억 손실을 인천시가 떠안고 있다. 친박심기에 바빠 동서화합은 커녕 편가르기가 노골적이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만들기에 일조한 것은 나의 '의리', 박근혜 퇴진을 외친 것은 나의 '정의'라고 규정하고 행동으로 옮기기로 했다.
2016년 4월, 봄 기운은 완연한데 가만히 있으면 질식할 것 같은 나라꼴이 되었다. 20대 총선(2016.4.13)의 서막도 올랐다. 결과이긴해도 새누리당은 쪽박을 찼고 정치권에서 발악을 하던 친박이라는 단어도 내 예언대로 소멸되었다.
그러나 박관천이 주도한, 최순실이 권력서열 1위라는 정윤회문건 이전부터 박근혜는 최태민 사위 정윤회에 둘러싸여 정치를 해 와 십상시를 낳은 신사동팀의 전횡은 공공연했다.
4월에 시작한 캠페인 과 대한민국 1인혁명 시위는, 11월 우리 인터넷신문이 문닫는 날까지 하기로 계획했으나, 생업으로 여름동안은 뜸했다. 결과를 보니 그 여름동안 박근혜(정부)는 곪아 터지고 있었다. 세월호 침몰때도 미용시술에만 관심있었을 정도니, 그 속에 들어있는 욕망과 욕심과 아집이 자신들이 썩어감을 느끼지 못하게 했다.
10월 들어 고영태는 10월6일 jtbc기자를 만났고 최순실,정유라,박근혜가 부상하기 시작했다. 고영태와 정유라의 강아지, 정유라의 말과 박근혜, 체육계와 미르재단이 거침없이 터져 나왔다. 언론이 말한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가 마침내 '최순실 태블릿PC'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이것을 '박근혜게이트', '박근혜의 국기문란죄'라고 최초 보도했다. 그 중심에 많은 사람들이 우려한 최태민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박근혜에게 올 것이 왔다. '낭주지추(囊中之錐)' 라는 말이 좋은 의미로 재능을 감출려고해도 눈에 띈다,는 뜻으로 알고 있는데, 최근에 알았지만 언 사람이 그 반대 - 나쁜 의미로 쓰인다고 말하더라. '주머니 속 송곳'은 반드시 드러난다,는 뜻. 즉, 몹쓰고 나쁜 것은 감춰도 삐져나온다는 뜻이다. (지금보니 후자가 맞다.)
마침내 박근혜는 10월 25일 최순실 등이 개입한 비선실세 의혹에 직접 사과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상심한 시민들의 분노를 본격적으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광화문 등 전국에 3만,10만,50만,100만,150만.. 촛불이 모이더니 횃불로 되고, 박근혜 탄핵,퇴진,하야,처형에 단두대가 등장하기도 했다. 촛불혁명,민중혁명,시민혁명을 외치다가 결국 국회탄핵소추로 헌법재판소로부터 '박근혜파면 선고'를 받았다. 이날이 2017년 3월 10일이다.
50년전부터 최태민과 인연을 맺어 물의를 가지고 있는 박근혜, 지난 모든 정부 때도 최태민-박근혜 관계가 '육연의 관계로 동거'로 보는 보고서들이 많다. 박근혜가 정말로 박정희대통령의 유업을 받아 복지국가를 이루고자했다면, 김용환 고문의 말처럼 최태민그림자를 지우고(수면 아래에 두고) 국민과 서민의 손을 잡아줬어야 했다.
최순실 조카 장시호 증언에 따르면, 1979년부터 최태민,박근혜,최순실,정유라 등등이 한지붕 아래 가족으로 지냈다. 그래서 한편 최순실을 벗어날 수도 벗어나서도 안된 박근혜가 이해되나, 왜 그토록 '말' 에 집착했을까,는 여전히 의혹으로 남는다.
소설이지만 여자의 심리를 사실적으로 다룬 기록물은 얼마든지 많다. 채털리부인의 사랑 이라든지 테스, 주홍글씨,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등등에서 보면 당사자는 남이 뭐라고 지랄하든말든 세상이 쑥대밭이 되든 정녕 자신이 살아가야 한다는 명제로 모든 현상에 대해 묵묵하고 덤덤할 수밖에 없는 게 그들이고 우리네 인생이다. 최태민의 주술과 교시로 역사적 부녀대통령 목적달성에 성공했는데, 무죄든 감옥 3년 살든 30년 살든 모든 게 박근혜에게는 잡것에 불과할 것이다.
낼모레 1차공판을 앞둔 현재, 구치소에 수감중인 박근혜 범죄행위 수사기록이 12만여 쪽이라고 한다. 집행유예부터 무기징역까지 다양한 견해들이 나온다. 또 대법원까지 간다면 몇 년이 걸린다고 한다. 할 수 있다면, 박근혜를 100년동안 독도지킴이로 파견하면 좋겠다. (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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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간 자료들]
▒ 서울포스트 창립10년 기획캠페인 ▒
짜라투스트라 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대들에게 초인超人을 가르치노라"
패도 정치·윽박 정치로 사회 분란 조장하는,
"친박에게 쪽박을 초박에게 대박을!"
기독교 교회헌금 너무 비싼고로,
"십일(1/10)조를 이십일(1/20)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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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포스트 거리캠페인 배너 자료 ⓒ서울포스트
▒ The SeoulPost 10yr Campaign ▒
Hope for the People!!
▒ 서울포스트 창간10년 기획캠페인 ▒
-대한민국 1인혁명-
- 박정희 대통령까지 욕되게 한, '친박' 사용 금하라!
- 박 대통령은 정치에서 손 떼고, 불쌍한 백성들 손 잡아주라!!
- 비싼 교회헌금, 십일조를 이십일조로!!!
▒ The SeoulPost 10yr Campaign ▒
Hope for the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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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1인혁명 - 또 다시 광화문에서 ⓒ20160612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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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4,5,6월 '서울포스트 창간10년 기획캠페인' 자료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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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4,5,6월 '서울포스트 창간10년 기획캠페인' 자료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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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역에서 ⓒ서울포스트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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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로에서 ⓒ서울포스트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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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서울포스트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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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의도 서울대교 ⓒ서울포스트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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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6.12 이재명 성남시장 단식 중 조우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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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4월,5월,6월 나 홀로 '서울포스트 창간10년 기획캠페인 - 대한민국 1인혁명'을 외쳤던 광화문에, 11월엔 100만이 모여 민중혁명,시민혁명,국민혁명을 외치고 있다. ⓒ20161119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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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4월,5월,6월 나 홀로 '서울포스트 창간10년 기획캠페인 - 대한민국 1인혁명'을 외쳤던 광화문에, 11월엔 100만이 모여 민중혁명,시민혁명,국민혁명을 외치고 있다. ⓒ20161119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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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화문 5차 박근혜 하야,퇴진,탄핵 촛불집회 ⓒ20161126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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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퇴진 6차 촛불집회 초저녁 서울 광화문 풍경 ⓒ20161203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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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퇴진 6차 촛불집회 초저녁 서울 광화문 풍경 ⓒ20161203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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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포스트 창간10년 기획캠페인-대한민국 1인혁명-그리고 또 다시 광화문에서. 2016년 봄에 사용한 피켓 에 문구만 만들어 붙였다. ⓒ20170212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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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포스트 창간10년 기획캠페인-대한민국 1인혁명-그리고 또 다시 광화문에서. 2016년 봄에 사용한 피켓 에 문구만 만들어 붙였다. ⓒ20170212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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