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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리뷰] 고려 멸망의 한이 서린 임진강 적벽 아래 썩은소(석은소) 견지낚시(2010/07/19) 와 이후 트레킹 자료들
 양기용 기자 (발행일: 2016/06/05 13:12:42)

[탐사리뷰] 고려 멸망의 한이 서린 임진강 적벽 아래 썩은소(석은소) 견지낚시(2010/07/19)와 이후 트레킹 자료들
-SPn 서울포스트, (마이 네임 이스) 량기룡 기자


※ 오래된 기사여서 그런지 포털 '다음'의 뉴스 에서 검색되지 않아 다시 리뷰 합니다. 임진강 석은소(썩은소)을 만난 것이 2008년인데 그간 임진강도 개발의 유혹을 피하지 못하고, 지금 썩은소 부근 과 그 일대는 엉망이 돼, 전에 느낀 고즈넉한 자연은 사라졌습니다.

바로 아래 자료사진은 2008~2009년 임진강 낚시를 다닌 후 한 동안 못 간 이후, 천혜의 소중한 자연이란 생각이 들어 2013년부터 마음먹고 탐사한 결과입니다. 놀러(?) 다닐 당시엔 임진강 탐사나 트레킹 을 생각조차 못했던 때였죠.

외가가 섬진강 상류 물길이 감아도는 그림같은 곳이어서 수영하며 모래무지 잡았던 기억, 또 어릴적 뒷집 아저씨 따라 낚시를 곧잘 다녔고, 군 제대후에도 자주 들린 보성강 부터 여기 임진강은 기억속에 영화로 말하면, 브래드 피트 가 플라이낚시를 한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 1992)'처럼 한가롭게 돌아 댕긴 시절이었습니다.

↑ 2013년 12월 1차
↑ 2013년 12월 1차
↑ 2013년 12월 1차

↑ 2013년 12월 2차
↑ 2013년 12월 2차
↑ 2013년 12월 2차
▲ 일주일 사이에 멋진 신세계로 변한 임진강. 오전 눈보라, 오후 햇볕이라는 최상의 날씨였다. (파노라마 꾸밈) ⓒ20131214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일주일 사이에 멋진 신세계로 변한 임진강. 오전 눈보라, 오후 햇볕이라는 최상의 날씨였다. (파노라마 꾸밈) ⓒ20131214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2015년 11월 3차
↑ 2015년 11월 3차
↑ 2015년 11월 3차
↑ 2015년 11월 3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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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에도 임진강으로 몇 번씩 낚시를 갔는데 최근에는 심드렁해졌다. 서울에서 가는 길도 복잡하지만 38선을 넘어 곳곳 군사지역을 지나 폐허처럼 남아있는 그 지역에 간다는 것은 위험요소도 따른다. 인적이 뜸한 너른 불모지는 전에는 군훈련장이었는데 지금은 잡초만 무성하다.

▲ 임진강 '썩은소' 적벽 - 예사로운 모양새가 아니다. ⓒ2008~2010 세상을 향한 넓은 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새벽 물안개 오르는 강변에서의 한적한 정취는 북한땅이 더 가까워서 고요하다는 느낌. 낚시도구를 갖추고 보트를 띄운 강 아래로 장엄한 적벽이 버티고 서 있다. 한 눈에(숭의전 잠두봉도 그렇지만) 예사로운 모양새가 아니다. 나중에 주워 듣고 검색한 바, 고려 멸망 때 저 위에서 충신들이 망국의 한을 달랜 곳이라고 한다.

같은 경기도로 500년간 고려와 함께 번영한 도읍지 개성(開城) - 송도(松都), 송악(松岳), 개경(開京), 송경(松京)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 이 코 앞에 있어 당시 상황이 충분히 짐작된다.

지금은 저 적벽 주위를 가리켜 '(벽아래 배를 잡아 맨)쇠닷줄이 썩었다'는 데서 유래한 '썩은쇠'가 '썩은소'로 바뀌어 명명되고 있다고하나, 구전에 의하면 굴곡이 급한 강 아래 깊게 패인 곳이 있었다고 한다. (구전이 더 실증적임. 실제 한탄강과 만나는 두물머리 아래부분이면서 임진강 전 구간에서 이 지역이 굴절이 가장 심함. 아래 '벼랑 밑에 멈추어 움직이지 아니하였다'에 방점)

ⓒ서울포스트

썩은소(후소朽沼) 전설(자료)

썩은소는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 임진강변에 있는 소(沼)인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하여 왕위에 등극하면서 고려왕족인 개성 왕씨(開城 王氏)를 멸족시키려 하였다. 왕씨들은 살아남기 위하여 갖가지 인연에 따라 변성(變姓)이라도 하여 생명을 보존하고자, 전씨(田氏, 全氏)·김씨(金氏)·옥씨(玉氏)·금씨(琴氏)·박씨(朴氏) 등으로 변성을 하고 피신을 하였다.

그 중에 뜻 있는 왕씨 몇 사람이 모여 의논하기를,
“우리들이 모두 이렇게 변성을 하더라도 우리 조상님은 한 분이니, 왕건 태조(王建太祖) 할아버지의 신주는 우리들이 안전한 곳에 편안히 머무시도록 해 드립시다.” 하여, 돌로 배를 만들어 송도에 안치된 왕건의 신위를 그 돌배에 모신 후 송도 앞 예성강에 띄우며 신위를 향하여 말하기를,
“이곳 송도 땅에서 모진 고난을 당하시느니 차라리 이 돌배를 타시고 안전한 곳을 찾아 피신하소서.” 하였다.

그 돌배는 임진강과 합류 지점에 도달하여 임진강을 역류하여 강원도 철원과 경계인 황해도 안악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강을 따라 내려오기 시작하여, 지금의 미산면 동이리 임진강 어느 벼랑 밑에 멈추어 움직이지 아니하였다. 신위를 모신 돌배를 차마 홀로 떠나 보낼 수 없어 이 돌배에 같이 타고 있던 왕씨 몇 사람들은,
“이 곳을 피신 장소로 태조 할아버지께서 정하신 듯하니, 이 곳에 모시도록 합시다.”하고 최종 결정을 내렸다.

배에서 내리면서 쇠로 만든 닷줄을 매어 놓고, 근처에 사당을 지을 명소를 물색하여 정한 후 강가에 나가 보니, 하룻밤 사이에 쇠닷줄이 썩어 끊어지고 돌배는 어디로 갔는지 흔적이 없었다. 급히 하류 쪽으로 가서 찾아보니 그 곳에서 4㎞쯤 떨어진 곳의 ‘누에머리[蠶頭]’라는 절벽에 붙어서 움직이지 아니하였다.
이에 그곳 절벽 위에다 사당을 지어 태조 왕건의 신위를 모시고 ‘숭의전(崇義殿)’이라고 이름하기로 하였다.

그 곳이 지금의 미산면 아미리(峨嵋里 : 지형이 위엄있다)에 있는 숭의전 자리라고 한다. 지금도 청명한 날에는 누에머리 절벽 밑에 가라앉은 돌배가 보인다고 전하여지고 있으며, 썩은소의 유래는 하룻밤 사이에 쇠닷줄이 썩었다고 하여 ‘썩은쇠’라고 불리던 것이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말소리가 변하여, 오늘날에는 ‘썩은소’로 불리어지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몇 리 내려가 ‘숭의전’이 있는 누에머리 - 잠두봉(蠶頭峰)은 임진강에 수직으로 솟은 바위 봉우리인데 그 형태가 누에의 머리와 닮았다하여 지어진 이름.


↑ 2008-2009 서울포스트자료

견지낚시 래프팅

파주시 적성면 어유지리(魚遊池里 고기가 노는 연못)를 거쳐 연천군 전곡읍 마포리에 짐을 풀었다.
6.25전까지 잠수교로 사용되었는데 지금은 쓸모없게 된 마포교 아래쪽으로 보트를 띄우는 것이 좋다. 임진강에는 옛날 임금의 상에 오르는 황복이 났는데 지금은 흔치 않고 장어, 잉어, 누치, 민물준치 등이 많이 잡힌다.

낚시왕 ㅅ사장이 70여 센치 잉어와 민물준치를 걸어 올렸고 나는 40여 센치 누치 두 마리다. 이 놈들은 얼마나 힘이 센지 낚시에 걸린 느낌이 바위가 걸린 것 같다. 2,30분 씨름을 해야 겨우 건지고 걸렸다가 줄이 끈어진 것이 훨씬 많았다. 한번은 한시간쯤 실갱이하다가 눈앞에서 떨구기도. 역시 놓친 고기가 크다는 생각에 1m는 넘을 것 같았다. 잉어회 맛은 일품.

10여년 전 브래드 피트 가 주연한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에서 플라이낚시가 우리 강 지형과 어종에 따라 따라 견지낚시 형태가 된 곳이 여기 임진강이다.

정말 아련한 추억으로, 어릴적부터 나도 낚시를 무척 좋아했다. (지금은 주암댐으로 더 알려졌지만) 국민학교때 보성강(섬진강 상류)으로 낚시를 자주 가신 뒷집 아저씨를 따라 가 1m가 넘는 가물치며 잉어잡이를 구경하곤 했다. 떡밥을 던지고 자세를 깔아 두고 밤을 새던 적도 있었던 그 강, 제대하고 뻔질나게 다녔던 장강(長江)이었다.

↑ 2008-2009 서울포스트자료
↑ 2008-2009 서울포스트자료
↑ 2008-2009 서울포스트자료
↑ 2008-2009 서울포스트자료
↑ 2008-2009 서울포스트자료
↑ 2008-2009 서울포스트자료
↑ 2008-2009 서울포스트자료
↑ 2008-2009 서울포스트자료

임진강(검색)

강원도(북한) 법동군·판교군·이천군·철원군, 경기도 연천군·파주시를 남서류하는 강.
한강의 제1지류로서 길이 272㎞. 법동군 용포리 두류산(頭流山:1,323m) 남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남서쪽으로 흘러 법동군과 판교군을 지나고, 판교군 남부에서 고미탄천(古味呑川)을 합한 뒤 이천군, 철원군 내에서 평안천(平安川)과 역곡천(驛谷川)을 합친다. 휴전선을 지나 연천군 전곡읍과 군남면 경계에서 한탄강이 흘러들며, 유로를 남서쪽으로 바꾸어 파주시로 흐르다가 문산천(文山川)과 사천(沙川)을 합친 뒤 파주시 탄현면에서 한강에 흘러든다.

임진강의 명칭은 고구려의 진임성(津臨城)을 신라 경덕왕 때 '임진'으로 고쳤으며 파주군 파평면 율곡리의 ‘임진나루'에서 기원. 경기도의 파주시, 동두천시, 양주시, 연천군, 포천시와 강원도 철원군에 걸쳐 흐르기 때문에 부분별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강에는 어름치·열목이·붕어·잉어·메기·뱅어·숭어 등의 물고기가 서식하고 있다. 국토 분단 전에는 농산물의 집산지였던 고랑포(지금의 경기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 일대)까지 강을 따라 배가 다녔으며, 일대에는 판문점, 임진각, 자유의 다리 등이 있다.

상류지역에는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노탄온천·갈산온천·하린원온천 등이 있다. 선조가 몽진할 때 불을 밝혔다는 화석정과 권율장군이 쌓은 봉서산(鳳棲山)산성·윤관장군묘(사적 제323호)·자운서원·이이선생묘·신사임당묘·경순왕릉·공순영릉(사적 제205호)·반구정 등 수많은 유물·유적이 있다.



북한강에서
-양기용

오늘도 강은 안개를 놔 주지 않는다.
머언 전력(前歷)으로부터 가늠할 수 없는 몸짓 때문일까.
물기 흐드러진 수초더미
다시 오지 않을 바람으로 제 살 부대껴
삶의 역한 내음을 밀어 낸다.

아침도 이른 때
쪽대 몰며 깔깔대는 그네들.
너무도 허술한 계절의 비늘이 퍼득이고
많은 기억을 망가진 그물처럼
빠져 보낼 수 있다면 피래미 몇 마리 각시붕어 몇 마리로도
풍성한 아침을 맞았으리.

강줄기 거슬러 눈을 든다.

산자락 태양은 노른자처럼 걸려
살아 있는 꿈으로 출렁이는데
애써 끓인 그네들의 찬 속에는
유년의 추억과 물비릿함까지 섞여있다.

침묵으로 대신한 해장술이 채워지고
몸 따스함으로 안개 걷힐 때
한 때 용맹했던 이름 내 부르며
나 오래 잠들었던 상쾌함을 느끼고 싶었다. (龍)


- 수협중앙회 사보(1995. 6월호)에 실린 시가 어울린다.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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