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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한국 최고 수령 용문산 용문사 은행나무의 황금단풍
 양기용 기자 (발행일: 2015/11/08 23:04:33)

[탐방] 한국 최고 수령을 기록한 룡문산 룡문사(最高 樹齡 龍門山 龍門寺) 은행나무의 황금단풍
-SPn 서울포스트, (마이 네임 이스) 량기룡 기자


▲ 비오는 토요일 용문산 용문사 탐방 ⓒ20151107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가뭄에 저수지가 말라 아우성치는 농촌 사람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도시 서민(빈민)에게 비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다. 할 일이 없어져 굶어야 한다. 몇 해 전 두세 달 동안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서울지방에선, 계속 조여온 정부의 각종 요금으로 실제 굶어 죽은 사람, 노동일이 없어 자살한 사람들이 있었다.

한국으로 귀화한 소련출신 교육인·언론인·사회운동가, 박노자(朴露子, 티코노프 블라디미르 Владимир Тихонов 블라디미르 티호노프)씨의 말을 빌자면, 국가는 개인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않는다. 개인과 국가는 별개라는 얘기다. 최근 그의 글 '헬조선 에서 민란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를 접했었다. 결론은 나도 그같은 생각을 진즉부터했지만 접근은 달랐다. 내 진단으로, 민란에 참여했다간 바로 당장 굶어 죽을 학생,청소년,노동자들이 넘쳐나기 때문. 자본가(국가)와 노동자(백성) 간 근대 서구자본주의 철칙은, 노동자들이 삶의 임계점에서 아둥바둥 할 정도로만 권리를 준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사회에서보면 정규직에게는 무한 권리를, 비정규직 이하에선 그 '철칙(바뀌지 않는 쇠鐵 같은 법칙)'이 지켜지고 있다.


비가 주적주적 내리는 토요일 교외선을 타며 출발부터 몸도 마음도 개운치 못하다. 지난주 갑자기 강하한 영하 기온에 혹독한 겨울신고식을 치르고있는 중이다. 수북한 고지서에 전화는 발신정지. 그래도 사회단체장으로부터 언제 거대한 계획을 발표하는 세미나가 가 있다는 메시지 는 들어왔다. 이제부터는 박근혜한테 서민을 기대하느니 물개가 네 발로 걸어다니는 것을 기대하기로 하자.

또 하나 무겁게 만든 것은 우리 역사를 배우는 국사교과서 국정화문제와 우리 문화재 등에서 본 자가당착, 지나친 국수주의 경향과 사실적인 역사적 징표인 유적(지,물), 문화재 등에서 나타난 왜곡과 사실성 문제다. 즉, 우리나라 대부분 사찰 창건연혁에 원효대사(617∼686)나 의상대사(625~702)가 거의 들어간다. 심지어 그 분들 시대 이후에 창건한 사찰에서도 그런 현상을 보아왔다. 불교계에서의 위상을 고려한 영향력으로 유추할 수 있으나, 한편으로는 어느 시대에 의도적으로 일사분란하게 유행한 풍토(사실과 다른)로 볼 수 있다,는 것이 내 시각이다.

용문사(룡문사 龍門寺, 대한불교 조계종, 전통사찰 제47호.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가 유명한 산인 용문산(룡문산 龍門山) 아래 자리잡고 서울에서 편리하게 산 탐사와 사찰 답사를 겸할 지역이지만, 과거 사회단체에서 용문산관광단지에 야유회를 갔어도 사찰까지는 방문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최고령 은행나무가 있는 곳, 마의태자가 나라잃은 설움을 뒤로하고 금강산으로 가던 중 꽂았던 지팡이가 그렇게 자랐다고 배웠다. 그럼에도 용문사에 대해 별 관심을 두지 않은 것은 이상도하겠지만, 기실 용문산,용문사에 대한 편견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용문산(1157m) 최고봉은 그간 군부대가 있어 1157고지 등으로 불려 출입이 통제되었고, 은행나무 유명세 빼곤 대단한 유적물이 없다는 점이었다. [※ 지난 3일 용문청년회와 옥천청년산악회, 양평군은'가섭봉(迦葉峰)'이라는 정상 명칭 제막식을 가졌다고 한다. 1882년에 발행된 '지평현 여지도'에 용문산 '가섭봉'이라고 표기된 것을 되찾았다고 함.]

그러나 절까지 걸어보니 참 좋은 길, 관광단지에서 용문사까지는 일반적으로 절집을 가는 길의 표본이다. 노송이 드리워져 있는 길가에서 높다란 산세가 쭈삣 보이는가 하면 금방 개천을 건너고 세월을 이겨낸 빽빽한 숲과 고목들을 볼 수 있다. 오늘은 비젖어 더 선명한 단풍낙엽색깔이 고혹적이다.

용문사는 통일신라 후기 신덕왕2년(913) 때 대경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며, 경순왕(927~935재위)이 친히 행차하여 창사하였다고 한다. 고려 우왕4년(1378) 지천대사가 개풍(개성) 경천사의 대장경을 옮겨 봉안했고, 조선 태조4년(1395) 조안 화상이 중창했다. 이후 여러 중창이 있었지만, 의병근거지로 일본군이 전부 불태웠다. 다시 일제가 조선내 태고종을 필두로 불교를 허용한 1938년 태욱스님이 대웅전 등 현재의 모습을 갖춰 중건했고 이후 신증축이 이뤄졌다.
유물로는 고려말 절의 사세를 크게 확장시킨 '정지국사(正智國師, 김지천 金智泉) 부도 및 비(보물 제531호)'와 조선초의 '금동관음보살좌상(보물 제1790호)'이 있다.

경내, 한국 최고수령 나무인 용문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호)는 1100년에서 1500년으로 추정하며 높이 40m, 밑동둘레가 11m에 달한다. 우리나라 병화와 전란에도 살아남았던 나무라하여 신목, 천왕목이라 부르고, 조선 세종때는 정3품 당상직첩으로 하사받기도 한 영목.
수령 1100년은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던 중 심은 시기로부터고, 1500년은 의상대사부터다. 900년대 창건기록으로 보아, 용문사 은행나무 설화에서 의상대사(600년대) 지팡이 운운하는 것은 모순이고 왜곡으로, 필자가 전기했던 우리나라 사찰에 의상,원효 물들이기의 일부로 볼 수 있다.

최근 미 시카고대학연구팀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종교를 가진 사람이 가지지 않은 사람에 비해 이기적이고 편협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내가 경험에 의해 이 자료에 심증적으로 적극 동조한 것은, 종교인들은 기본적으로 타 종교를 부정하고, 타 종파를 배타시한다.
우리나라 불교계를 보더라도 일제 때 친일파가 주도했든 아니든 태고종이 조선불교 맥을 부활했으나 해방후 친일청산을 이유로 이승만,박정희 정권의 비호를 받고 조계종파가 득세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그간의 재산 등의 권리를 포기하고 태고종은 찌그러 들었으며, 걸레스님이건 땡중이건 쌀 알 10배 뻥튀기하듯 조계종 옷을 입고 화려하게 부활해 좋은 절과 자리를 꿰 차고 있다.
(나는 역사를 이분법적으로 보지 않으나) 자, 친일자들에 의해 친일청산 명목으로 친일자들을 몰아냈다면, 새 세력은 친일자들이까 반일자들일까. 당시, 종교계에서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그런 작업을 했기에 지금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도 이런 범주를 벗어나기 어렵다.

1000년 은행나무 밑동이 나를 경악스럽게했다. 은행나무로서는 영동 천태산 영국사(녕국사 寧國寺)가 천년을 넘겼다고 하며 600년 쯤은 여러 그루를 봤으나 살아오면서 이만큼 큰 나무를 처음 본다. 생장도 하늘로 쭉 뻗어올라 강직하다. 천년세월 동안 생명을 지속한 것은 사람의 족보로도 가늠되지 않는다. 2천년전에 죽은 예수보다 더 위대하다. 지구상에는 3천년,6천년 추정 나무들도 제법 있다. 나는 외경스럽게 합장으로 절하고 사진 찍는다고 요리조리 몇 번을 오갔다. 계속된 비에 신발도,옷도,가방도 젖었으나, 용문사은행나무를 세상에서 가장 정확히, 가장 멋지게 담겠다는 각오로 렌즈 의 물방울을 닦아내며 셔터 를 눌러댔다, 그래봐야 똑딱이디카 가 보는대로 찍었지만... 그래도 다른 사진들과 비교해보니 내 솜씨가 역대 최고다.ㅎㅎ

절 뒷마당에서 구름이 내려온 용문산 중턱의 용각바위도 담았다. 너무 현대적으로 모셔진 관음보살좌상은 문 열고 옆에서만 담고, 정지국사 부도탑을 알현하게 위해 산길을 올랐다. 축축히 젖은 단풍이 수북하다. 비안개 가을 산길을 홀로 걷는 정취는 묵언수행자만큼은 아니더래도 뭔가 한 웅큼의 알맹이가 가라 앉은 느낌이다. 애석하게 한 그루는 고사했지만 천년을 살았을 놀라운 괴목도 발견했다. 역시 신목처럼 경탄스러웠고, 지금 사진을 보니 피안의 세상 분위기다.

다시 경내에 들 때 비줄기는 더 거세졌다. 이젠 중국관광객들까지 밀려든다. 그들 틈새에서 파노라마 사진을 찍고 귀경길에 올랐다. 기대하고 계획한 날이 아니었지만 금빛 최적의 은행나무잎을 담은 행운이었다. (龍)







※ 아래 파노라마 붙임 사진

▣ 본지 발행인 (양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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