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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어려서부터 증오와 적개심, 분열을 먼저 배운 우리
 권종상 자유기고가 (발행일: 2015/06/21 23:19:06)

[논단] 거미줄, 그리고 눈웃음을 먼저 주는 사회
-SPn 서울포스트, 권종상 자유기고가



여름이 다가옵니다. 당연히 맑은 날이 차지하는 비율이 훨씬 높아집니다. 우기를 벗어난 시애틀은 아름답습니다. 물론 보는 이들에 따라서는 비 오는 시애틀이 더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비가 내리는 날에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깥에서 거리를 걸으며 일을 해야 하는 제겐 비는 불편함을 뜻하고, 그것은 아름다움이란 걸 규정짓는 데 약간의 영향을 끼치긴 하는 모양입니다. 물론 시애틀다운 가랑비가 내리는 날, 빗방울이 맺힌 거미줄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일은 비 내리는 날 가질 수 있는 미학적 특권이긴 하겠습니다만.

거미줄의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맑은 날이 지속될수록 저는 집을 부수며 다닙니다. 제가 원하지는 않는 일이긴 하지만, 우편배달을 하다 보면 그런 일들이 있습니다. 거미집에 걸리는 일들이 생기는 거지요. 녹음이 우거진 곳들을 다니다보면, 거미들이 집을 지어 놓은 걸 보지 못하고 제가 부수고 다니는 겁니다. 처음엔 자꾸 걸리는 거미줄을 귀찮게 생각했는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거미들에겐 미안한 일이더군요. 거미줄은 얘들의 집이기도 하고, 사냥터이기도 한 것이고, 생존을 위한 작업들이 진행되는 곳입니다. 아울러, 거미가 집을 제대로 짓고 보전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더 많은 해충들에 시달리게 되겠지요.

비 오는 날이면 땅바닥을 더 많이 쳐다봐야 합니다. 이끼를 밟으면 미끄럽기때문이기도 하지만, 혹시 지렁이나 달팽이가 밟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저도 모르는 채 달팽이를 밟았는데, 엄청 미안하더군요. 파삭, 그 얇은 집이 깨지며 나는 소리가 꽤 날카로웠습니다. 신발 바닥으로부터 느껴지는 그 물컹함 자체가 좋은 감각도 아니었고. 그 다음부터 어지간하면 바닥을 봅니다. 길가에 지렁이가 나와 있으면 흙으로 옮겨주고, 달팽이를 보면 나뭇잎에 올려 줍니다. 어쩐지 나랑 뭔가 연결돼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에. 생명은 소중한 것이지요.

물론 파리나 쥐에게 보이는 내 적개심은 참 이율배반적이긴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그들로 인해 치명적일수도 있는 병을 받을 수 있다는 공포심에서 비롯된 것이고, 모기는 실제로 나를 물어 피를 빨아갑니다. 아무리 한 피를 나눴다고 해도 때려잡아야 하는 이유가 있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박멸한다'는 말의 느낌은 별로 좋지 않습니다.

생각해보면 어려서부터 박멸이라는 말을 참 많이 들어 왔습니다. 쥐, 벼룩, 이를 박멸하자는 이야기를 어렸을 때 들었고, 공산주의자를 모조리 색출해 박멸해야 한다는 소리도 들으며 자랐고, 심지어는 우리의 생활의 태도나 버릇 같은 것도 박멸의 대상으로 비쳐질 때도 있었습니다. 가장 최근엔 메르스라는 박멸의 대상이 있기도 하지요. 물론 이런 것들은 박멸이 돼야 하겠지만, 인간이 존재하는 한 박멸될 수 없을 겁니다.

어쩌면, 한국 사람들은 세상의 많은 것들을 공존의 대상이 아닌 박멸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에 제일 익숙해져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증오를 배우며 자라는 것은 우리의 분단 상황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남한도, 북한도 공히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공존보다는 박멸을 먼저 배우는 세상을 재단하고 인지하는 방법은 경쟁을 통한 것이고, 그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공동체의식을 왜곡시키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문득 해 봅니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눈길을 마주치면 서로 웃음과 인사를 교환하는 곳에서 산 것이 25년이 넘으면서 늘 고민해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처음에 그렇게 건네오는 눈웃음들이 왜이리 어색하던지. 그때 내가 "저 새*는 날 언제 봤다고 보자마자 쪼개?"라고 했던 내 모습이,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이었는지.


시애틀에서..

▣ 재미교포, 자유기고가 (권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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