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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산] 겨울산행의 시작 - 그 종주길에서 생각한 삶
 나종화 객원기자 (발행일: 2014/11/24 20:05:33)

[용문산] 겨울산행의 시작 - 그 종주길에서 생각한 삶
-SPn 서울포스트, 나종화 객원기자


▲ 겨울문턱에서 용문산행 ⓒ20141118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나종화

우주의 시간표에 의해서 주어진 상수를 운(運) 의지나 주변 여건에 의해 바뀔 수 있는 변수는 명(命) 주역으로 그 변화를 해석하는 명리학에서는 운명이란 이 둘의 조합이라 말합니다. ​

따라서 자연계에 사계(四季)가 있듯 운의 순환 과정도 이러한 계절의 변화를 닮는다고 합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분이니 그럴 수 있겠네요. ​

인생의 사계는 대충 이렇습니다. ​
콱 막혀있어 삶이 고단하다면 봄 하는 것 마다 술술 풀리네요. 여름 요즘 자알 나갑니다. 가을 모든 것이 떠나간 무주공산에 우두커니 앉아있나요? 겨울 ​이또한 자연계의 현상이라면 거스를 수 없겠지만 그것에 적응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요. 그래서 사주팔자가 같은 사람의 경우 ​단지 처해있는운의 계절만 같지만 운명은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고 명리학은 말하고 있습니다.


나의 운은 봄.여름.가을.겨울중 어느 계절에 속해 있는지 ​그리고 지금 나는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에 대해 깊히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에게 다가 올 미래를 이 세상 어떤 점쟁이 보다 더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만약에 하는 되는일도 없고 하는일 마다 꼬이는 고난의 행군을 하고 계신다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너무 많은 힘을 쓸 필요도 없고 누구 눈치볼 필요도, 그것으로 인해 낙답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 시절을 지나면 거짓말처럼 꽃피고 새우는 호시절 ​그리고 숲이 무성하고 햇볕 쨍쨍 내려 쪼이는 당신의 계절이 찾아올테니까요.
그러니 헛 힘쓰지 말고, 먹고 살만큼만 움직여 가면서 무던한 마음으로 다가올 때를 기다리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하네요. ^^​

10년 산행을 통해 깨달은 것은 ​짧으면 하루, 길면 이틀간의 산행과 인생의 오르내림이 비슷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종주산행은 더욱 그렇구요. ​

용문산 휴양림을 출발하여 백운봉, 함왕봉, 장군봉, 가섭봉을 거쳐 다시 용문사까지 내려오는 용문산 종주산행을 하면서 생각해 보니 거의 확신이 드네요.

▲ 유명산 억새밭
▲ 백두산에서 가져온 바위로 만들었다는 통일기원비석

인생은 산행을 닮았다.
아니 산행은 인생을 닮더라.

​이번 용문산 종주산행은 지금부터 시작될 겨울산행에 대비한 적응훈련을 하는 기분으로 시작했습니다. 여산님의 고교 동창이신 (이하 존칭생략, 뒷줄 좌측부터 ) 정찬, 김형일, 여산, 손승국, 황성용 그리고 셜리님과 릴님이 이번 산행에 함께해주셨습니다.

용문산 자연 휴양림에서 용문사까지 종주거리 11km에 통상적으로 약 7시간이 소요됩니다. 우리는 여기에 한시간 반을 더해 소요시간을 8시간 30분으로 잡았습니다.

오전 8시 50분에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계획대로라면 오후 5시 용문사 도착 석양빛에 물든 용문산 은행나무 앞에서 인증샷을 찍기에 딱 좋은 시간이거든요.

휴양림을 출발하여 두리봉으로 가는 주등산로는 오른쪽인데 왼쪽으로 향하는 산객이 보이네요. 용문사에서 이쪽방향으로 진행한 종주산행을 경험해 본 셜리님이 그편이 빠르다는 것을 확인해 줍니다.
그렇게 했더니 무려 20분이나 단축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산이든 초반엔 휴양림에서 두루봉 오르는 것 처럼 빡세잖아요. 긴 종주산행에 몸이 원할하게 적응하기 위해서는 이런곳에서도 멈추지 말고 천천히라도 꾸준하게 올라야 합니다.

초반 빡센 걸음에 대한 보답으로 두리봉 정상은 시원한 조망을 선사합니다.
원주 방향으로 연무속에 산너울이 겹겹히 출렁이고 있었는데 나뭇가지에 가려 그 장관을 카메라에 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더군요. 그 대신 양평시가지와 더불어 굽이 굽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가는 남한강의 아련한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봤네요.

산행의 시작이 평탄한 오솔길을 걷는 것일 수 도 있고 이번 산행처럼 처음부터 고단한 오르막일 수 도 있고 지리산 반야봉이나 덕유산 설천봉처럼 차나 곤도라를 타고 오른 정상부터일 수 도 있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 잖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모님 보살핌속에서 평탄한 어린시절을 보냅니다. 그런데 어릴적부터 조실부모 한다든지, 빈곤이나 병마에 시달리며 참 어렵게 시작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또 부모 잘 만나서 우리들이 평생을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부와 명예를 거머쥐고 태어난 이들도 있구요.

이번 산행의 시작은 빡쎗지만 아주 힘든건 아니었어요.
게다가 20~30분만에 시야가 활짝열린 봉우리(두리봉)을 만났고 진한 솔향기가 풍기는 소나무 사이로난 오솔길을 걸을 수 있었으니까요.

제가 어린시절을 보낸 1960년대엔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 가난했습니다. 특히 저 처럼 시골에서 태어난 촌놈들의 유년기는 누구나 할 것 없이 그리 여유롭지 못했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진학할때 고비마다 부모님 마음고생은 물론이고, 당사자들도 많이 힘들수 밖에 없었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산행의 시작은 제 또래 386세대들의 인생을 닮은것 같습니다. ​

멀리 구름위에 걸쳐 있는 비로봉에서 남대봉까지 이어지는 능선을 보면서 치악산에 대한 그리움을 실어봅니다. 겨울에 다녀와야겠어요. ^^

제 아들한테 ' 우리땐 이랬다 '
이런 이야기는 왠간해선 안합니다.
걔들과 저는 피부로 접한 환경이 다르니까요.

대학가는 것?
시험 점수보다는 등록금을 낼 수 있는 형편인지가 중요했고 경제 성장기라서 일자리는 지금보다 많았겠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그런 일을 찾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사회 시스템이 그런데로 갖춰져 있어 많은 걱정꺼리들을 해소해주지만 당시엔 모든 문제를 혼자서 감당해야 했으니까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있어 스트레스 강도가 요즘 젊은 사람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컷지요.

​그 와중에도 자기 존재에 대한 성찰이라든지 더 바람직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고민은 거의 목숨을 거는 수준이었던 것 같아요.
조국(祖國)과 민족이라는 단어가 요즘 세대들의 스펙이나 SNS만큼 일상언어였으니까요. 요즘은 그런말, 그걸 업으로 먹고 사는 국회의원들도 잘 하지 않습니다. ㅎㅎㅎ

하나 더!
다들 꿈을 꾸었어요.
자취방에 모여 앉아 오뎅국물 안주로 쏘주잔을 돌리곤 했는데 그 꿈들이라는게 참 무모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대학교수가 되고 싶다던 한 놈팽이 친구는 진짜 대학교수가 되었습니다. 사업가의 꿈을 가졌지만 지질히 가난해서 담배값이 없어 늘 빈대를 붙던 친구는 잘나가는 사업가가 되었구요.
​저는 요?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유감스럽게도 다른애들처럼 거기에 매달리진 않았네요.
하지만 꿈을 이루는데 게으르긴 했어도 책을 한권냈고, 또 준비중이니 전혀 아닌것은 아니네요. ㅎㅎ​

사실 우리나라가 이만큼 살게 된 이유는 우리 윗 세대들의 희생과 헌신의 토대위에서 우리는 더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독재나 불의와 싸웠고 모두가 꿈을 꾸고 최선을 다해서 도전한 결과입니다. ​​

그래서 아들에게 이 이야기 만큼은 꼭 합니다.
"무모한 꿈일 망정 네 가슴속에서 떠오르는 그대로 품어라.
그리고 절대 포기하지말어라.
그러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

초보 산꾼이었을 무렵 헬기장에 서서 백운봉을 바라보는데 저길 어떻게 올라가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움찔해지더라구요.
하지만 막상 붙어서 한발한발 옮기다 보니 어느덧 정상이었습니다. ^^
그러면서 자신감을 갖게 되었지요.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산행을 많이 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비박 배낭 짊어지고 산을 오르는 젊은 친구들이 든든해 보이는 것은 그 등으로 언젠간 이나라를 짊어지게 될것이므로... ​당신이 청춘의 봉우리를 지나 40대나 50대 혹은 60대 이상의 길을 걷고 있을지라도 꿈은 얼마든지 꾸실 수 있습니다. ​등산로가 거의 수직으로 솟구치고 무수한 계단을 ​기어올라야 하는 백운봉일지라도 ​막상 다가서면 길이 열리잖아요. ​그러니 한국의 마터호른 백운봉 뿐만 아니라 알프스에 있는 마터호른을 오르는 꿈을 꾸신다 하더라도 뭐랄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

봉우리는 어렵게 오를수록 성취감이 큽니다. ​예를 들면 똑같은 돈 1억원도 복권에 당첨되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그것과 한푼 두푼 십년간 적금을 들어서 모은 그것은 숫자는 같을지 몰라도 그것이 갖고 있는 가치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죠. ​

백운봉은 땀을 뻘뻘 흘려야 오를 수 있는 봉우리입니다. ​
그 보답으로 얻는 조망 하나는 서울 경기 일원에서 최고일 것입니다.
동서남북이 죄다 뻥 뚫려 있거든요.
삶속에서도 우리는 이런 백운봉을 만나곤 합니다. ​처음으로 내집을 살 때 직장에서 첫 승진을 할 때 사업가로서 첫 10억원 매출을 할 때 햐 ~~ 기분 정말 좋잖아요. ^^

​이제 본격적인 겨울인가 봅니다.
해발 941미터 백운봉은 바람이 살랑살랑 불기만 해도 ​차거운 기온이 피부를 움추려 들게 합니다. 게다가 정상이 워낙에 좁아서 아랫쪽에서 계속 올라오는 산객들 때문에라도 오래 머물수가 없거든요. 우리도 간식을 들면서 한 10분가량 머물다가 다음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옮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

삶도 그렇잖아요. ​
​목표를 달성한 성취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지고 그 수준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난관이 나타납니다.
그러니 일단 봉우리에 올라왔으면 쉴틈없이 부단하게 움직일 밖에요.

백운봉에서 시작하여 장군봉 방향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가파른 계단길을 하염없이 내려오게 됩니다. 한 200미터 내려왔으니 이제는 바닥이겠거니 싶은데 또 내리막길이 나타나면 맥이 쫙 풀리지요. ㅎㅎ ​

​드디어 사내사 갈림길입니다.
대충 거기가 바닥인 셈이거든요.
그때부터 장군봉까지 가는데 쭈욱 오르기만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여러개의 봉우리를 수 없이 오르내려야 합니다.
가끔은 너덜지대도 만나기도 하구요.
이렇게 오르막과 내리막이 지겹게 반복되다가도 어느 순간 전망 좋은곳에 데크가 나타나서 기분좋은 쉼터 구실을 해줍니다. ​

사람들은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면 더 큰 목표를 꿈꾸게 마련이지요.
지금 보다 삶이 더 어려운 국면으로 접어들꺼라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다릅니다. 더 큰 성공으로 일취월장 쭉쭉 이어지거나 현재의 성취를 꾸준히 유지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시 내리막길을 타야하는 일이 허다합니다. ​

저도 그런 경우를 두 어번 경험했네요.
작은 목표를 달성한 다음 그것을 디딤돌 삼아 더 큰 목표를 바라보았는데 하염없이 내려가기만 하더라구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 이말이 실감납니다.
아휴~~ 그땐 정말 죽을 맛이었죠.

어느 순간 인생을 바닥을 찍었다 싶긴 하지만 그 이후에도 좀 좋아지는가 싶으면 다시 힘들어지는 고난은 반복됩니다. 하지만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가장 힘들었을때에 비해서는 한결 나아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

아마 저도 이쯤에 와 있지 않나 싶네요. ​끝간데 없이 떨어질때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힘은 듭니다. 오르내리기가....ㅎㅎㅎ​​

백운봉 정상, 장군봉 정상, 그리고 가섭봉 정상에 도달하여 성취감을 맛본 순간 보다는 ​체감 온도 영하 5 도 장군봉 부근에 비닐로 타프를 쳐서 추위를 막았습니다.
솔잎삼겹살도 삶아먹고 떡라면도 끓여먹고 후식으로 꿀꿀이죽에 가까운 꿀맛같은 섞어찌개를 배급(?)받은 점심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네요. ^^ ​

​인생도 마찬가지로 잘나갈때와 행복할때가 반드시 동일하진 않더라구요.
​구의동 단칸방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했는데 뱃놈이 육지에 막 상륙해서 뭘 하고 살아야할지, 다시 배를 타러 나가야할지 막막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맘고생도 참 많았지요.
그런데 이것저것 따져보니 그때가 좋았네요.
제 스스로 생각해봐도 의외입니다. ^^
그리고 매주 멋진 산과 더불어 좋은 산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지금도 행복하네요. ^^

용문산 정상은 계속 머물기엔 춥더라구요.
​게다가 점심때 너무 지체 하는 바람에 하산이 늦어질 것 같아 걱정이 앞섰구요. ^^
길도 좋지 않은데 자칫하면 헤드랜턴을 키고 내려와야 할 것 같아서요. ​
그래서 정상에 잠시 머물다가 곧장 하산을 서둘렀습니다. ​

​주변의 평가나 성취감으로 따진다면 최고조에 이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새벽 2시쯤, 만취상태로 귀가하는 것이 다반사였지요.
그런데 곧장 잠자리에 들지 않고 키우던 난이파리를 정성스럽게 닦곤 했습니다. ​비로소 혼자가 되었을때 엄습해오는 불안감을 해소하느라 그랬던것 같아요.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전 갓 초등학교에 들어간 딸내미 방문을 살짝 열어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예쁘고 귀여운 아이를 보는데 왜 그리도 불안하든지요. 내가 잘못되면 저 여리디 여린 새싹 같은 아이가 어떻게 될까 싶어서요. ​

만약 제게 그런 기회가 다시 찾아온다면 저는 과감히 우회할 것입니다. ​진심입니다. ^^
이제는 정상이 주는 짜릿함보다는 삶의 매순간 주어지는 잔잔한 감동을 즐기고 싶습니다. ^^

용문사에서 용문산을 두번 오른 경험이 있는데 ​정말 내키지 않는 코스중 하나입니다. ​길도 가파르고 뾰족한 돌맹이들이 많아 걷기도 정말 힘듭니다. ​

이번에 거꾸로 그길을 내려가 보니 오르막에 비해 두배는 더 지겹더라구요. ​상원사 갈림길에서 마당바위까지 600미터 거리가 6 km보다 멀게 느껴질 정도로 였으니까요. ㅠㅠ
​평소 전혀 문제가 없었던 제 무릎에도 신호가 오는 것을 느끼면서 일행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구요. ​

높은곳에 오른 사람일수록 용문산 하산길 처럼 힘든 내리막을 만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잘 나가다가 음주운전이나 도박으로 한순간에 무너져버린 인기 스타들처럼 말이죠.
​건강이든, 인맥이든, 마음가짐이든 잘나갈때 미리 준비해두지 않은 경우 그런 길은 진짜 가시밭길이나 다름없을 겁니다.

​예전에 변두리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 한때 잘나가다가 추락한 어느 유명연예인이 부지런히 서빙을 하는 것을 보고 눈을 의심한적이 있었습니다. 다음에 또 거길 가게 되었는데 그날도 그 친구가 동분서주하며 열심히 일을 하더라구요.
선입견과 달리 참 괜찮은 친구다 싶었는데 결국 컴백해서 요즘은 활발하게 방송활동을 하고 있더군요.
그런 사람은 내리막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을 한거지요.

​​​그렇다면 태어나서 부터 죽을때까지 쭈욱 평탄한 길을 걷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인생이며 최고로 좋은 운명일가요?

저 역시 지금까지 살아온 것에 비해서 평탄한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여러번 있었는데도 ​그길을 선택하지 않은것이 후회스러울때가 많습니다. ​

이를테면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 진학을 포기한 일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놓고도 임용을 포기한 일 등등~~ ​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울창한 소나무숲 사이로 난 평탄한 오솔길을 가장 좋아는 하지만 온종일 그런길만 걷는 것은 고역일것 같아요.ㅎㅎ^^
악전고투가 기다리고 있을지언정 겨울 공룡능선같은 곳이 훨씬 나을 듯 싶거든요. ​

제가 갖고 있는 사고(思考)의 틀 즉 명(命)을 그렇게 타고 났으니 앞으로도 제 인생이 그리 평탄하지만은 않을것으로 점쳐보네요. ^^
하지만 험한 길일 수록 강렬한 감동을 만날 수 있으므로 ​제 건강과 의욕이 허락하는 삶의 선물이라 생각하고 기꺼히 그 길을 받아드릴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지난 10년간의 산행에서 얻은 가장 큰 유익이랍니다. ^^​


(나종화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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