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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인수봉을 품다
 나종화 객원기자 (발행일: 2012/07/19 19:06:58)

[북한산] 인수봉을 품다
-SPn 서울포스트, 나종화 객원기자


▲ 북한산 인수봉 주변 ⓒ20120621 세상을 향한 넓은 창 - 서울포스트 나종화

아득한 옛날
땅으로 내려와 산이 된 꼬리별 긴 바위 꼬랑지가 있는 인수봉이 딱 그런 모양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생긴 봉우리를 꼽으라면 당연히 인수봉이다. 두 번째는 울산바위 세 번째는 진안 마이산 인수봉은 만경봉에서 바라볼때가 가장 멋있다.

단순미의 극치다.
석양에 황금색으로 빛 날땐 말할 수 없을 만큼....
545봉에서 바라보는 저 설교벽의 역동하는 생명력도 장관이다.


에이스님과 둘이서 545봉을 뒷문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숨은벽 능선으로 올라왔다.
가뭄이 길어지는 것 만큼 목마른 나무들의 애처로운 탄식이 들리는 듯 하다.

" 물좀 주세요 "
길섶의 여린 관목들이 시들어가고 아무리 가물어도 쫄쫄 거리며 흐르던 밤골 계곡은 언제 물이 있었는가 싶게 바짝 말라버렸다.
아 ~ 하늘이여 제발 비좀 내려 주소서.


참 어지간히 쏘다녔지만 북한산엔 안가본 구석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특히 인수봉은 그 꼬리 조차도 만저보지 못했다.
암벽화 한 컬레가 닳도록 연습했으니 [고독의 길]쯤은 따라 갈수도 있었건만 어느날 그런 간절함이 사라지면서 인수봉은 더욱 멀어졌다.
에이스님께서 이번엔 인수봉 꼬리라도 딛어 볼 기회를 주신다고 하여 설레임 반 두려움 반으로 따라 나섰다.
이번엔 545봉도 숨은벽 능선도 대충대충 지나간다.


숨은벽 대슬랩을 거쳐 들어가면 쉽겠지만 숨은벽 능선을 연기처럼 빠져나가 인수봉 꼬리를 찾는 알바를 시작했다. 숨은벽과 인수봉 사이의 마른 계곡을 여기저기 디졌지만 악어바위로 올라가는 길은 도무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렇게 한참 오르내린 끝에 사기막골 계곡 밑바닥에서 시작되는 길을 찾아 우이능선 등줄기를 따라 올랐다.

북한산에서 가장 가파르고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이 능선의 공식명칭은 설교벽(雪郊壁)’이다. 북향이라 눈이 가장 먼저 쌓이고 가장 늦게 녹는 곳이라서 '눈 쌓인 성 밖의 벽’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545봉 가는 도중 만난 슬랩을 기어오르다 예상보다 훨씬 가팔라서 시껍했던 터라서 그것보다는 쉬웠지만 악어새 가는 길에서 만난 서너개의 슬랩도 그리 만만하지는 않았다. 악어새가 주는 방문 기념 선물이라 생각하고 그 짭짤함을 즐겼다.


고도가 높아지자 인수봉 랜드마크 귀바위가 짠 하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 웅장함에 감동하면서도 절대 예사롭지 않을 것 같은 악어새 가는길에 대한 긴장감은 배낭보다 더 무겁게 어깨를 짓눌렀다.

10미터는 족히 되어보이는 수직으로 서 있는 벼랑을 기어 오르고 몸뚱이 하나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한 좁을 굴을 통과해야만 악어새를 만날 수 있었다.
배낭을 벗고 맨몸으로 올라가는데 홀드와 발디딤이 좋아 어렵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에 붙어보는 벼랑이라서 긴장감이 엄습했다. 에이스님은 그 보다 훨씬 더 난이도가 높은 오른쪽 직벽을 타고 올랐다.


삼각형으로 돌출된 바위가 날개를 펼친 새의 형상이며 그 위에 설교벽의 명물 악어 바위가 있어 그 바위를 악어새라 부르는 것 같다. 악어새 바로 밑에는 천길 낭떨어지에서 돌출된 서너평 크기의 테라스가 있었다. 바닥까지 불안정하게 기울어져 있어 거기에 서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링컨님이나 바람타고님이 여기에 왔더라면 이 살떨리는 테라스 끝단에서 멋진 포즈를 보여주었겠지만... 여기에서 조망할 수 있는 좀 특별한 풍광이라면 파랑새 능선에서 보다 훨씬 더 위압적인 강렬한 이미지의 숨은벽 능선을 적나라하게 드려다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악어새 바위 부터는 등반장비없이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왔던 길로 되돌아서 마지막 슬랩을 내려선 다음 능선길과 양편 골짜기를 연결하는 횡단길이 만나는 사거리에서 우회전했다.

그 길이 육모정에서부터 시작 되는 연인길의 일부일지 모르겠지만 길이 워낙 가팔라서 느긋하게 데이트를 즐길 수 는 없을 것 같다. 남녀가 단 둘이서 이 길을 가게 된다면 서로 잡아주고 끌어주다가 연인으로 발전할 수 도 있겠다. 골짜기 하단까지 내려왔을때 긴 슬랩이 나타났다. 아마도 등반학교에서 연습 슬랩으로 사용하는 곳인 것 같다.
우리도 거기서 슬랩 연습을 했다.
에이스님으로 부터 슬랩을 오르는 요령 하나를 배웠다.


연습슬랩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한팀이 줄을 걸고 막 클라이밍을 시작하고 있었는데 2010년에 북한산산악경찰구조대가 개척한 [구조대 길]이다.

전체가 열두마디로 구성된 인수봉에서 가장 긴 리지길로 알려져 있는데 슬랩과 크랙등 암벽등반의 모든 구성요소를 다 포함하고 있어 인수봉의 [실크로드]로 불린다고 한다.

귀바위. 철모바위라고도 한다.
인수 대슬랩과 다양한 등반루트가 개척된 동벽.
인수봉의 클라이머들
나무가 우거진 부분이 인수 오아시스, 소나무에서 시작되는 날등이 이번에 에이스님이 도전하게 될 의대길
거미줄 같은 등반루트

인수 대슬랩 하단에 도착하니 거대한 성채같은 모습으로 웅장하게 서 있는 인수봉 동벽이 한눈에 들어오고 고함을 지르며 인수봉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산악인들이 마치 공성전을 하면서 성벽을 기어오르는 병사들 처럼 보였다.

인수봉이 우리나라 암벽등반의 메카로 각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마치 무우를 세워놓은 것 처럼 매끈한 인수 남벽이 아니라 바로 여기 인수 대슬랩과 동벽 때문이다.

아마 동벽도 인수 남벽과 마찬가지로 미끈한 몸매를 자랑했겠지만 오랜 조산활동과 풍화작용끝에 한 쪽이 함몰하면서 다양한 난이도의 슬랩과 크랙이 구비된 천혜의 암벽등반 코스가 된것이다.

인수봉엔 약 80개 가량의 암벽등반 루트가 개척되어 있는데 초보자들도 한 달 가량 연습하면 오를 수 있는 쉬운 길이 있는 가 하면 발딛을 틈이나 손잡을 틈이 우리같은 일반인들 눈엔 보이지 않아 스파이더맨이 아니면 도저히 오를 수 없을 것 같은 고난이도의 길도 다수다.

산악인들은 이런 암벽등반 루트를 [ xx 길 ]이라 부른다.
말하자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험한 길들은 죄다 인수봉에 모여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에 클라이밍 인구가 약 10만명 가량 된다는 보도를 본적이 있다.
몸짱이 대세인 요즘 젊은이들에게 실내암장에서 볼더링을 위주로 하는 스포츠 클라이밍이 인기가 좋다고 하니 암벽등반 뿐만 아니라 스포츠 클라이밍까지 합산한 숫자이겠지만 매해 증가하는 인수봉 바위꾼만 봐도 암벽등반이 확산추세에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일반적으로 암벽등반은 위험하다고 인식되어있지만 막상 접해보면 자신의 의지와 몸으로 불가능을 극복하는 희열을 맛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매력적이고 장비를 갖추고 안전수칙만 잘 준수하면 자전거 타는 것 보다 덜 위험한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그 좋은 것을 왜 니는 안하느냐고 묻는다면 일부러 피하는 것은 아니며 기회가 되면 다시 시작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달겨들지 못하는 이유는 첫째 소질이 부족하다.
주변에 계신 분들만 보더라도 에이스님은 대단한 담력과 발란스(균형감각)를 잡는 능력과 힘도 좋으시고 강쥐님은 암벽등반에서 가장 크게 요구되는 능력인 발란스에 있어서 탁월한 능력이 있고 링컨님은 자타가 공인하는 담력의 소유자다. 그런데 나는 뭐하나 내세울 것 없이 막무가네로 덤벼든 타입이라서 암벽등반은 혼자서 하는 취미가 아니기 때문에 자칫 함께 하는 분들에게 민폐가 될 것 같아 망설이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지금은 인수봉을 오르는 것 보다도 인수봉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기 때문에 꼭 올라야 한다는 절박함을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암벽등반 보다는 선등자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고 리지길을 갈 수 있는 능력 정도만 갖추려한다.

인수봉의 [고독의 길]
도봉산의 [ 낭만길]
설악산의 [ 한편의 시를 위한 길]이나 [별을 따는 아이 길]
월출산의 [ 사자바위 리지길 ]정도는 꼭 가보고 싶다.


잠수함 능선 (숨은벽 동능선?)과 인수봉 사이에 있는 골짜기를 인수봉 밴드길이라 부르는데 지겨운 너덜길이지만 안가봤다면 한 번쯤은 돌아볼만하다. 바위꾼들의 거친 호흡을 지척에서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밴드길을 돌아나와 숨은벽 정상에 들렀더니 어김없이 공단 지킴이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좀 다이내믹한 산행을 즐기고 싶은 우리에게 눈총과 원망을 받고 있는 공단이긴 하지만 샛길이나 위험한 등산로 통행을 막는 것은 잘못된 정책이 아니다. 굳이 거길 들어가려하는 우리가 잘못된거지. ㅎㅎ

숨은벽 정상에 올라올때마다 서로 쌩뚱맞게 바라보곤 했는데 이번엔 살갑게 말을 건넸다.

[ 고생 많으시네요.]
[ 아 예 감사합니다.]
[ 요즘도 호랑이굴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나요?]
[ 예 종종 계세요 ]
[ 그럼 저기 못 올라가게 막는 역할을 하시는 거네요.]
[ 딱 그렇다기 보다도, 저기에 낙석이 많아 함부로 다니다간 무지 위험하거든요. 또 여기가 인수봉 등반객들을 잘 살필 수 있는 위치기 때문에 사고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어서 여기에 있는 겁니다. ]

호랑이굴에서 빠져 나오는 입구에는 전에 보이지 않던 커다란 낙석이 위험천만하게 걸려 있다. 북한산 사고가 많이 줄고 있는 것도 다 저 분들의 노고때문이다.

가끔 반칙을 할 수 밖에 없는 처지긴 해도 공단의 공은 알아주어야 되지 않겠는가.

인수봉 남서쪽
하강 대기 장소
하강

장군봉에서 30미터 하강 해본것이 유일한 경험이라서 인수봉의 60 미터 하강은 보고만 있어도 오금이 저린다.


숨은벽 정상에 올라 설교벽 능선을 자세히 살펴보니 악어새 바위는 능선 1/3 지점쯤에 있는 것 같다.
오른쪽 하단 뽀쪽 튀어나온 바위가 악어새 테라스 그 위 뾰쪽한 바위가 악어새다.
설교벽리지 출발점은 악어새 바위 위쪽 둥그스런 식빵모양 바위 하단 부터다.

설교벽 능선
악어
악어와 악어 사냥꾼
만경대
백운대로 향하는 말바위 부근
숨은벽 능선

이렇게 해서 단지 설교벽 능선에 있는 악어새를 만나러간것이었는데 인수봉을 품고 한 바퀴를 도는 귀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번번히 이렇게 멋진 산행을 안내해주시는 에이스님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밤골로 내려오면서 둘러보니 어지간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대동샘조차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장마철이 가까워지는데도 비가 올 기척이 없다.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처럼 산에 다니는 입장에서도 비가 간절한데 농민들의 심정은 어쩌겠는가.
이거 기우제라도 드려야 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 하늘이여 이땅 구석구석 흥건히 적시도록 비를 내려 주소서 ]


(나종화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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