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봉정암 순례길
-SPn 서울포스트, 나종화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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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악산 봉정암 순례길 ⓒ20120607 세상을 향한 넓은 창 - 서울포스트 나종화 |
트레킹 코스는 종교적 성찰을 위한 순례길
모든 종교적 행위는 신이나 초월의 세계에 대한 인식을 전제로 한다.
원시 종교에서는 타악기의 음향등을 지속적으로 정신에 주입하여 의도적으로 해리상태에 이르도록 해서 현실세계에서 이탈하는 방법을 취했다.
오늘날의 예배형식에도 어느 정도 그런 요소가 남아있긴 하지만 점차적으로 문명화된 종교는 신비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더 깊은 이성적 성찰을 통해 신과 현실 너머의 세계에 도달하고자 하였다.
힌두교나 조로아스터교등 다양한 종교에서도 그런 의식이 행해지고 있지만 침묵과 고행을 통해서 신께 다가서려는 가톨릭 수도사들이나 명상을 통해 현생의 삶을 초월하고자 하는 불교 선사들의 수행방법이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인 이성적 성찰 방식이다.
트레킹이 전 세계적으로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데 본디 이것은 순례라 하는 종교적 성찰과정이었다. 순례자들은 수백 수천 키로미터에 이르는 성지를 향한 길 그 자체를 수행과 예배의 노정으로 받아드려 목숨을 걸고 그 멀고 험한 길을 기꺼이 걸었던 것이다.
전 세계 도보여행자들의 로망이 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은 예수의 열두제자중 한사람인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성지 산티아고콤퍼스텔라를 향한 말 그대로 순례길이고
네팔의 유명한 트레킹 코스들 또한 힌두교의 성지로 여기는 히말라야 설산 어딘가에 있다는 인디스 갠지스강의 발원지를 향한 수행자들의 순례길에서 비롯되었다.
순전히 오체투지만으로 히말라야의 험산 준령을 넘어 라싸까지 향하는 티벳불교의 순례길 또한 언젠가는 현대인의 영혼을 밝히는 지상 최고의 트레킹코스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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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렴동 계곡 |
봉정암 순례길
네팔이나 산티아고처럼 수백 수천키로에 이르는 기나긴 순례길 뿐만아니라 짧지만 강한 종교적 성찰을 경험하게 하는 순례길도 있다.
얼마 전 백담사에서 오세암을 거쳐 봉선암에 도착해서 다시 구곡담 계곡과 수렴동 계곡을 거쳐 백담사로 내려온 셜리님의 산행기를 읽으며 그곳이 바로 그런 순례길일 것이라는 진한 인상을 받았다.
순례길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봉정암 가는 길은 지금은 용대리에서 백담사까지 차로 들어갈 수 있고 백담사에서 봉정암까지 약 12km의 등산로도 잘 정비되어 있어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다니기에 크게 불편하지는 않지만 예전엔 깊은 골짜기를 건너고 험한 고개를 넘어가야하는 용대리에서 출발하는 족히 20km 남짓의 거친 길이었을 것이고 게다가 지금으로 부터 백 년전만하더라도 광활한 설악의 원시림에는 호랑이. 표범. 늑대같은 맹수들이 득실거렸을 것이니 이 세상의 그 어떤 순례길 보다 위험하고 힘든 고행길이었을 것이다.
간절한 염원으로 부처님 진신사리를 친견하기 위해 봉정암을 향해 걸었던 당시의 어머니들과 할머니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셜리님의 산행기를 보고 마음이 먼저 달려가는 바람에 에이스님과 링컨님께 급히 청하여 곧장 설악산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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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시암 |
우리도 셜리님처럼 당일치기로 봉정암을 왕복할 작정이었다.
백담사에서 봉정암까지 왕복 24km 남짓이니 하루길로는 결코 만만한 거리가 아니다. 더구나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용대리에서 백담사까지 오가는 셔틀버스 운행시간인 10시간 이내에 봉정암을 다녀오려면 그야말로 치밀하게 시간을 안배하지 않으면 낭패를 당할 수밖에....
준족인 셜리님도 막차를 놓쳤다는데 우린 가능할까 하는 우려를 하면서 용대리 주차장에서 8시 첫차를 탓다.
버스는 구절양장같은 백담계곡의 좁은 길을 달리고 백담계곡의 무수한 물굽이들의 장관이 차창밖으로 지나갔다.
이토록 아름다운 계곡이라면 아예 용대리에서부터 걸어 들어가는 것이 더 좋을것 같은데 온통 시멘트포장도로에다 오가는 차량의 매연때문에 애를 먹었다는 다녀온 이의 글을 읽은 적이 있어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할밖에..... 백담계곡 전용 트레킹 코스가 꼭 필요한 대목이다.
백담사들러 존경하는 만해선사의 유적을 감상하고 싶었지만 시간에 쫓긴 우리는 그럴 겨를 없이 곧장 영시암을 향하는 걸음을 재촉했다.
이 정도 산행 속도라면 봉정암에서 점심을 먹고 내려와 충분히 6시 막차를 탈 수 있을 것이라는 링컨님의 짐작에 힘입어 영시암에서 잠시 다리쉼을 하고 다시 봉정암을 향한 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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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담 계곡의 시작 |
셜리님은 오세암을 거쳐 봉정암으로 가셨지만 우리는 거꾸로 수렴동 계곡과 구담계곡을 거쳐 봉정암으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기왕이면 기운이 팔팔할때 구담 절경을 보고가자는 의도에서였다.
수렴동 대피소 갈림길을 지나면서 부터는 설악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산수화풍의 계곡이 전개되었다. 갈수기라서 수량이 부족한 것은 아쉬웠지만 수렴동 계곡의 풍광 만큼은 '옥반에 굴러가는 구슬'이라는 옛 시인의 표현 그대로였다.
구담계곡 부터는 등산로를 가득채운 탐방객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한가하기 이를데 없는 산길 마디 마다. 멋진 경관들이 쉬임없이 펼쳐져 나그네의 발목을 붙들었다.
아~~점심때까지 봉정암에 도착해야 하는데 구담아 날더러 어찌하라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린 시간의 끈을 놓아버렸다.
달밤에 백담사에서 용대리 걷는 길도 무지 운치있다는 링컨님의 말을 에이스님도 나도 이제는 기정사실로 받아드릴 수 밖에.... 하긴 속세를 벗어난 구담계곡에서 시간타령을 늘어놓는다면 누가 이르러 우리를 산꾼이라 하리요.
" 우리나라 제 일경이라 일컫는 천불동 계곡이 동양화 액자 속에 들어 있는 멋진 산수화라면 구담 계곡은 내가 그 산수화속 주인공이 될 수 있으므로 여기가 바로 천하 제일경입니다." - 이상 링컨 산도사님-
요즘 산행때마다 그랬던 것 처럼 여기서부터는 생각도 걸음걸이도 죄다 신선놀음으로 바뀔 수 밖에 없었다.
가을 단풍철이면 구담계곡에 찬란한 색의 향연이 펼쳐진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생명력으로 충만한 이즈음의 구담계곡에서는 누구든지 가슴이 축축해질 수 밖에 없어 시심이 발동하기 시작한다.
그대 시인이 되고 싶은가?
구담으로 들어가시게.
구담계곡과 천불동계곡이 자웅을 겨루 듯 천하제일경이라 일컫는 공룡능선의 가장 강력한 적수는 바로 저 용아장성이다.
용아장성의 웅장함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이 환청으로 들렸다.
아홉이라는 단위는 궁극의 수 십에 근접하고 있어 '무수히 많은'이라는 뜻을 품고 있나 보다.
구담계곡! 아홉개의 폭포와 담이 있을꺼라고 액면 그대로 믿었다가 하나 둘...아홉.. 열셋 더 이상 헤아리기를 포기했다.
구담계곡엔 그야말로 셀 수 없이 많은 폭포와 담이 있는것 같다.
구담의 벼랑마다엔 새하얀 비단폭이 걸려 있다.
저 비단을 가져다 옷을 짓는다면 하늘나라의 선녀들이 입는다는 천의무봉(天衣無縫)이리라.
'신들의 만찬'은 텔레비젼 드라마지만 설악산 구담 계곡의 '신선의 오찬'은 현실이다.
우린 백담사에서 용대리까지 밤길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비싼 댓가를 지불하고서 구담계곡에서의 '신선의 오찬'을 맘껏 즐겼다.
처음으로 만나는 호된 된비알!
봉정암이 가까워 졌다는 증거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면 잠깐 걸음을 멈추고 눈을 들어 산을 보라.
아~~ 설악 !!
이런 감탄사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대는 사람도 아니다.
사자 바위
설악을 만난 감동과 격정을 억누르고 찬찬히 걸어 고갯마루에 이르니 신선함의 결 그 자체가 다른 바람이 분다.
여기가 바로 설악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는 그 선계(仙界)일까.
아직은 아니다.
지쳐 실룩이는 양어깨 뒷쪽으로난 좁은 산길을 따라서 사자바위에 오르기 전엔.....
사자바위에 오르니 드디어 설악이 전모를 드러낸다.
땀 흘린자만 볼 수 있는 진정한 바로 그 가슴 벅찬 설악산!
예전에 링컨님은 저 세개의 바위를 오가며 춤을 추는 선인(선도를 수련하는 사람) 들을 구경했단다. 진짜 신선이 내려와 춤을 춘다 한들 하나도 놀랍지 않겠다. 여기 사자바위 앞에 펼쳐지는 신선의 나라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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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능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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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아장성 |
용아장성 맛보기
두어달 전부터 용아장성은 우리들 뒤풀이자리 단골 안주가 되었다.
비록 술자리에서 꾸뻑 졸면서 꾼 꿈일 지언정 '꿈은 이루어진다'
맛배기가 없다면 세상 무슨 재미로 살겠는가.
이번엔 용아를 살짝 간만 보기로 하고 '출입 금지' 팻말이 가르키는 친절한 이정표를 따라 십여분 오르니 어느덧 용아 등성이다.
위대한 용아장성 !!
용이 몸뚱이를 뒤척이는 듯 그 위에 올라탄 마음이 떨리고 몸이 흔들린다.
봉정암에서
봉정암은 순례길의 클라이막스요 하이라이트다.
그러나 정작 여기에 도착해서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것은 해발 1200미터에 위치한 이 고즈녁한 산사가 초파일을 맞이하려는 참배객들로 북적였고 다른 절과 마찬가지로 어김없이 공사중이라 왠지 어수선했기 때문이다.
봉정암의 진면목을 만나기 위해선 꼭 하룻밤을 묵어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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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암 5층 석가 사리탑 |
봉정암 석가 사리탑
자장은 신라의 왕족이며 당나라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 승려로서 선덕여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당대에 대단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가 당나라에 머물던 중 어느 고승이 전해주었다는 석가모니 진신사리 다섯과를 양산 통도사,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 태백산 정암사, 사자산 법흥사 그리고 여기 봉정암에 각각 안치하고 적멸보궁을 세웠다.
해발 1244미터에 해당하는 고지에 적멸보궁을 세운 자장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거기엔 무척 재미있는 역사적 사실이 숨겨져 있는 듯 하다. 말하자면 '자장코드'라 불리우는.....
그걸 떠나서 이곳은 설악의 기운이 수태극 물태극으로 어울어지는 천하의 길지로 알려져 있다.
그 지난한 봉정사 순례길에서 마음에 있는 마지막 티끌 하나까지 말끔히 털어내고 명경지수처럼 맑은 영혼으로 신령스런 하늘의 기운과 영험한 땅기운과 만나는 이곳에서 지극정성 다해 올리는 기도가 받아드려지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불가사의일 것이다.
나도 두손을 합장하고 어머니의 회복과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에이스 형님의 기도에 동참했다.
PS : 그 후로 에이스님의 어머니께서는 병세가 많이 호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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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아장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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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능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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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능선 |
가보면 안다. 바로 여기
석가 사리탑 뒤편 언덕이 설악 전망대다.
불자들에게는 저 아래 석가 사리탑이 성지라면 우리같은 산꾼에게는 양팔을 벌리면 공룡과 용아를 한품에 안을 수 있는 바로 여기가 성지다.
이 대목에선 더 이상의 설명은 없다. 백문불여일등(百聞不如一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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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암에서 올라오는 마지막 고갯마루 |
머뭇거리다 보니 오후 3 시
백담사에서 6시 막차를 탈꺼라면 적어도 1시쯤엔 하산길을 잡아야 했다.
잰걸음으로 달리더라도 오세암까지 두시간 반 영시암까지 1 시간, 백담사까지 또 1 시간 그렇게 용을 써 봤자 7시 반....... ㅠㅠ
어차피 늦었으니 느긋하게 내려가자 했건만 링컨님과 에이스님은 무려 1.5 km의 내리막길을 날 듯이 내 달린다.
낸들 어떻게 하냐. 함께 날아야지.
하여간 오세암에서 봉정암으로 오는 길이 구담폭포에서 오는 길보다 열배는 더 힘들어 보이는데 이 길을 힙겹게 올라오시는 할머니들을 많이 만났다. 서두에서 얘기한 그 순례객 할머니들이다.
그 분들과 마주칠때마다 마음속으로 합장을 드렸다.
" 부디 성불하십시오 "
봉정암에서 오세암까지는 하산길인데도 구담폭에서 봉정암 올라오는 길보다 훨씬 힘들고 지겨웠다. 이렇다할 조망 조차도 없는 길인데 링컨님의 기가막힌 감각에 의지하여 멋진 조망터를 찾아 한 두번 쉬어갔음에도
북한산 의상봉 정도의 큰 고개 세개를 넘고 계양산 정도의 작은 고개 서너개를 넘어 오세암까지 오다보니 거의 기진맥진이다.
그런데 만약 가을에 그 길을 걷게 된다면 아마도 미쳐버릴 것이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오세암이 산사의 전형인냥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오세암]이라는 제목으로 많은이의 심금을 울린 정채봉의 소설과 애니매이션 때문이다.
오세암은 지금으로부터 삼 백년전에 흔적도 없는 옛 절터에 새롭게 창건한 백담사의 부속암자다. 전설은 이 절의 창건주 설봉스님이 형님의 아들을 절에 데려놨는데 어린 조카를 절에 두고 잠시 탁발을 하러 산을 내려온 사이 사람키가 넘도록 폭설이 내려서 도저히 들어갈 수 없어 발만 동동구르고 있다가 이듬해 삼월이 되어서야 올라가보니 암자에서 광채가 발하고 있어 법당문을 열어보니 성불한 아이가 관세음보살을 염하고 있더라는 것....
작가 정채봉은 아름다운 그 전설을 훔친 정말 멋진 도둑이다.
그의 붓끝에서 오세암이 더욱 아름답게 살아났으니....
오세암을 가시려거든 꼭 그 소설을 읽거나 애니메이션을 보고 가시라.... 감동 백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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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암 |
전에 여기에 포스팅을 한 내용이지만 먹을꺼리를 전혀 준비하지 못하고 혼자 통도사 뒤편 영취산을 올라가는데 정상 바로 아래에 백운암이 있었다.
보살님 여럿이 겉저리 김치를 담고 있었고 암자 입구에 있는 평상엔 몇 사람의 등산객들이 점심 공양을 기다리는 듯 스님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워낙에 허기가진 상태에서 '공양 한끼 신세 집시다'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차마 못하고 생고생을 한 적 있었는데 나중에 어느 블로그를 보니 백운암에서도 등산객들을 위해 공양을 한다는 것이다.
오세암에 도착하니 여섯시!!
조카를 석달씩이나 굶긴 설봉스님의 유지때문인지 인심좋은 오세암에서 등산객과 참배객을 위한 저녁공양을 하고 있었다.
멀건 미역국에 밥 한덩이말고 그 위에 익은 김치를 얹는 단촐한 메뉴가 전부였다.
그리 땡기지 않아 쪼끔씩 퍼서 담고 있는데 링컨님이 더 담으라고 채근해서 어쩔 수 없이 듬뿍듬뿍.
아 ~~ 먹어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말라는 것......
그 말은 바로 이럴때 쓰는 표현인 갑다.
국물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비웠음.
특히 설악의 맛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묵은 김치!
그 맛을 생각하니 지금도 침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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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암 수호신 동자바위 그리고 만경대 |
공양을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바로 뒤에있는 먹옷을 입은 참배객께서 저기가 바로 오세암의 수호신 동자바위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분의 말씀을 건성으로 흘려듣고 돌아와서 셜리님 블로그를 다시 살펴보다가 " 오호 통제라"를 외쳤다.
거기가 바로 " 그냥 가시면 아니되옵니다" 바로 그 자리!!
설악의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다는 설악산 종합 선물세트 만경대였던 것....
그쪽에서 내려오는 산객을 보며 우리도 함 가봅시다 했던 링컨님의 말만 들었더라도..
다시 한번 오세암의 김치맛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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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암에서 바라본 설악의 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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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암을 내려오면서 만난 거목 |
영시암을 지나면서 부터 숲속은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짙은 어둠이 내렸다.
그토록 많은 인파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텅빈 숲길을 걷는 우리의 대화조차 끊기고 헤드렌턴의 불빛을 따라서 마냥 걸어가는데 이놈의 길은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두가지 걱정이 머리속을 맴돌았다.
천근만근인 이 다리로 백담사에서 용대리까지 시오리(7 km) 밤길을 걸을 일이 태산같았다.
우선은 어쩌면 낼이 초파일이라 절에서 뭔가 준비물이 필요하여 그걸 사러 가는 차량이 분명히 있을 것이어서 절대 그럴일은 없을 거라는 터무니 없는 기대감에 의지했다.
그리고 셜리님의 멧돼지 바로 그놈이 이 어둠속에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면 어떻하지?
설악산 멧돼지는 산길을 가는 택시를 들이받아 철판에 구멍을 낼 정도로 사납고 억세다는데...ㅠㅠ
드디어 저 멀리서 백담사의 불빛이 눈에 들어오고 초파일을 맞이하여 무슨 막바지 공사를 하고 있는지 포클레인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서 인간세계에 다 내려왔다는 안도감에 사로잡힌 찰라 숲속에서 바시락 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요놈이 나타나 여보란 듯이 버티고 섰다.
딱 보니 중돗(중간 크기의 돼지)이라서 만만해서 "짜식 3:1 일이다. 어디 한번 덤벼봐랐!!!"
스틱을 딱딱 부딪히며 전의를 불살랐더니 곧장 줄행랑이다.
고놈을 그렇게 보냈더니 에이스님께서 지청구를 하신다.
"셜리님 멧돼지 인증샷 찍었어야 하는데 그렇게 보내면 어떻하냐구..ㅠㅠ"
하여간 첫 번째 걱정거리는 그렇게 통과...
백담사에 도착했더니 우리같은 처지에 있는 두팀이 어둠속에서 별바래기를 하고 있었다.
그분들을 보니 뭔가 잘 될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괜시리 느긋해진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다 보니 별빛이 참 고왔다.
그런데 그분들의 마음은 백담사의 별빛보다 더 고왔다.
그분들이 마련해준 차를 얻어타고 무사히 용대리로 내려왔다.
( 원칙적으로 백담사까지는 일반인 차량 절대 출입 금지 )
셜리님 말씀대로 귀인을 만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늦은밤에 백담사로 내려오는 모든이들에게 적용되는 법칙인지는 장담을 못하겠지만 만약 그런 처지가 된다면 멧돼지에게도 안부를 전해주시고 부디 귀인을 만나시길....
우리에게 이 멋진 봉정암 순례길 산행 계기를 주신 셜리님과 함께 해주신 에이스님 링컨님 그리고 오며가며 만난 여러 귀인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나종화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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