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l  로그인  l  회원가입  l  아이디/비밀번호찾기  l  2025.4.8 (화)
글씨크기 크게  글씨크기 작게  기사 메일전송  기사 출력  기사스크랩 트위터 페이스북
 http://www.seoulpost.co.kr/news/17436
[일본여행③] 남녀혼탕에서의 일체유심조
 나종화 객원기자 (발행일: 2011/11/22 19:01:22)

[일본여행③] 남녀혼탕에서의 일체유심조
-SPn 서울포스트, 나종화 객원기자


▲ 만자산 트래킹 ⓒ20111114 세상을 향한 넓은 창 - 서울포스트 나종화

자각

위스키 한 잔을 더 마셨는데도 잠이 오지 않고
정신은 또렷해져 다시 온천으로 내려갔다.

신 새벽
모든 것이 멈춘듯하여 짙은 유황냄새를 풍기며
피어오르는 수증기의 움직임 조차도 고요하다.

물이 뜨겁다.
지루함을 견디며 천천히 몸을 담근다.
마침내 머리까지 완전히 입수한후 수를 센다.
하나. 둘. .... 여섯. 열 푸하~~

새벽에 여길 찾은 것은 바로 이맛 때문이다.

온천에 몸을 담근채 멍때리고 앉아서 내가 나를 만난다.
그 시간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내가 내게 물었다.
뭐 하고 사냐고...
거창한 답을 바랜것이 아닌데 똑 떨어진 대답은 떠오르지 않고 마음만 비틀거린다.

물먹은 머리카락을 훝고 지나가는 고원의 찬 바람이 맵다.
돌에 기대고 드러누어 하늘을 본다.
이럴때 별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구름으로 가득찬 하늘은 칠흙같다.

스르르 눈이 감겼다.
잠이 깊히 들진 않은 것 같은데 비몽사몽중에 어딘가를 헤메고 있는 나를 보았다.
그통에도 쉬운 길도 있는데 왜 그리 힘들게 사냐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뜨고 대답했다.
그래 이제 쉬운길로 똑바로 가면 될것 아니냐.
인생이라는게 다 맘먹은대로 풀리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매 순간 내 서 있는 곳에서 갈길을 물어 답을 구하는 그것이
도(道)라면
그날 새벽 나는
만자산 기슭 노천온천 둔덕의 몽돌을 베고 누어

도를 통했던 것이다.
▲ 만자 온천지대에 있는 전형적인 료간

▲ 료간이 아니라 현대식 호텔에 묵었지만 객실만큼은 그런 분위기가 풍기는 다다미방을 선택했다.

남녀 혼탕

호텔에 들어서는데 선배가 말했다.
" 여기엔 남녀 혼탕도 있대 "
걱정스럽게 물었다.
" 그럼 온천을 할려면 무조건 혼탕에 들어가야 되는거요? "
" 걱정하지마. 별거 아니야. "
허걱 난생 처음 남녀혼탕을 하게 되는데 별거 아니라니...

이건 서양 여자들이 상반신을 드러내놓고 활보하던 바로셀로나 해수욕장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라서 호기심이 없진 않았지만 함께 벗어야 한다는 사실이 심히 걱정스러웠다.

객실에 여장을 풀어놓고 호텔 맨 아랫층에 있는 온천으로 내려갔다.
선입견과는 달리 탈의실과 실내온천은 남녀가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어 일단 안도의 한숨을 쉬었는데 거기 들어온 목욕객들 마다 거기서 대충 씻고 다들 노천탕으로 나가니 선배님을 기다리다가 하는 수 없이 먼저 노천으로 나갔다.

한 겨울이나 진배없이 차거운 바람이 확 달겨들어 서둘러서 전등불이 환하게 밝혀진 길을 따라 아랫쪽에 있는 온천으로 내려갔다.

노천탕 가까이 이르렀을 때 여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와서 깜짝 놀라서 얼른 수건으로 몸을 가렸다.

▲ 료간 마다 자체적으로 온천을 갖춘 경우도 있고

▲ 이곳을 찾는 여행자 누구라도 몇 백엔씩만 내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노천탕도 있다.

▲ 가보진 않았는데 저기도 남녀 혼탕 같기도 했다.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

그 노천탕의 구조는 웃음이 나올 만큼 단순했다.
산기슭 둠벙(연못)에 뜨거운 온천수가 담겨져 있는 것이 전부였다.

오솔길의 오른쪽은 남탕
그 길의 왼쪽은 남녀 혼탕 그리고 맨 오른쪽은 여탕이었지만 이 세개의 둠벙이 아무런 가림막도 없이 10여미터 이내에 있어 그런 구분 자체가 무의미 했다.

여탕엔 두세명의 여자들이 있었고 남녀 혼탕에도 두어명의 여자들이 함께 온 듯한 남자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맨 오른쪽 탕에 들어가 어둠에 잠긴 먼산을 바라보며 애써 초연한척 했지만 어찌 신경이 쓰이지 않겠는가.
간절히 기다리던 선배님은 오자마자 바로 혼탕으로 직행하여 자리를 잡고 계속 눈짓을 보낸다.
마지 못해 좁은 길 하나를 건너 그곳으로 넘어갔다.

바로 눈앞에 서너명으로 불어난 여자들이 자기네들끼리 담소를 즐기고 있었다.
몸을 수건으로 감쌓고 있어서 민망함은 덜했지만 시선을 어디다가 둬야할지 참 난감했다.
우린 꿀먹은 벙어리처럼 한동안 먼산 바래기를 하다가 아주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서로를 바라보고 깔깔 거리며 웃고 말았다.
여자들은 우리가 그러건 말건 개의치 않은 것 같았다.

그렇게 10여분이 지나니 비로소 이런 상황에 적응이 된 건지 어색함이 많이 사라졌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힐끔거려지는 눈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냅 둬야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선배님과 함께 다시 노천탕으로 내려왔다.
아까보다는 훨씬 더 느긋하게 온천욕을 즐기고 우리끼리의 대화에 몰입했다.

호텔에는 완전히 격리된 여탕이 따로 있어 대부분은 그쪽으로 가는 것 같고 이쪽은 주로 남자들의 시선을 덜 의식해도 될 만큼 나이가 드신 분들이 찾는데다 몸도 수건으로 확실히 가리고 있기 때문에 수영장 보다는 약간 더 그런 분위기 뭐 그정도였다.

북적거렸던 사람들이 떠나고 한산해질 무렵이었다.
이웃한 여탕에 여기선 보기드물었던 젊은 여인이 나타난 것만 해도 대단한데 더구나 출중한 S 라인 몸매까지 보여주어 더욱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물론 몸은 커다란 수건으로 확실히 단속을 했고 이내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곁에 있던 그녀의 존재감 조차도 잊고 대화에 몰입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 여인이 벌떡 일어났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 그대로였다.
언덕배기에서 내려오는 동행한 남자를 부르느라 자신도 모르게 그런 것 같았다.
" 헉 선배님 저기.... " " 뭐 ~~ " 하면서 선배님이 그쪽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그녀는 다시 물속으로 쏙~~~

예기치 않게 여인의 나신을 보게 되어 잠시 마음이 심숭생숭했지만 금새 평정심을 되찾을 만큼 만자산 노천온천의 밤이 더 아름다웠다.

뜨거운 온천에 몸과 마음 그리고 흉중의 찌든 때까지 씻어버린 만자산에서의 하룻밤!
혼탕에서의 약간의 흥분과 긴장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휴식을 경험했었다.

일체유심조!!

▲ 만자산으로 오르는 나무계단

만자산 트래킹

간밤에 과음을 했고 이런저런 상념에 사로잡혀 잠을 설쳤는데도 불구하고 만자산의 아침을 그대로 흘러 보낼 수는 없었다.

가벼운 트레킹을 위해 호텔을 출발하여 만자산으로 향했다.
조릿대 사이길과 화산재 사이로 나 있는 나무 계단길을 따라 이제는 많이 익숙해진 유황냄새를 맡으면서 삼십분 남짓 걸었더니 숙취도 달아나고 덩달아 기분도 좋아졌다.

그리고 만자산 정상에 섰다.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한 산 아래 풍경이 정겹다.
온통 조릿대로 덮혀있는 산자락 그 사이사이에 들어선 삼나무와 자작나무 군락들 정말 멋지다.
눈이 많다는 이곳의 설경은 얼마나 대단할까.

출입금지 팻말을 넘어서 유황을 뿜어내는 작은 분출구 곁에도 가보고 료간 주변을 얼쩡거리기도 하고 화산이 만들어놓은 그림 같은 호수를 한바퀴 돌아보고 겨울이면 스키장으로 바뀐다는 산 비탈 초원에 나 있는 오솔길을 느릿느릿 걸어서 호텔로 돌아왔다.
별것도 아닌 조식 뷔페가 꿀맛이었던 것은 시장기에다가 만자산의 눈부신 경치맛까지 더해져서 일게다.

▲ 만자산으로 오르는길의 풍경
▲ 만자산 정상에서 바라본 온천휴양지의 아침
▲ 조릿대의 바다위에 섬처럼 떠 있는 삼나무와 자작나무 군락
▲ 용출하고 있는 온천수! 이곳에선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 음산한 소리를 내면서 세차게 분출하는 유황개스 ⓒ서울포스트
▲ 고원의 가을이 펼치는 화려한 고별사 ⓒ서울포스트

여행이란 새롭고 낯선 세계와의 조우를 통해서 내면에 침잠해 있는 영감을 불러 일으키는 행위다.

그러니 밖에서 뭘 얻어내려고 애쓸 필요 없이 지 맘대로 할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온전히 풀어 놓으면 알아서 찾아내고 저절로 소통하면서 완전히 달라진 삶을 경험 할 수 있다.

만자산에서의 하룻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여행이었다.

(나종화 객원기자 )

[NEWStory makes History - 서울포스트.seoulpost.co.kr]
서울포스트 태그와 함께 상업목적 외에 전재·복사·배포 허용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독자의견 (총 0건)
독자의견쓰기
* 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 등 목적에 맞지않는 글은 예고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등록된 글은 수정할 수 없으며 삭제만 가능합니다.
제    목         
이    름         
내    용    
    
비밀번호        
스팸방지            스팸글방지를 위해 빨간색 글자만 입력하세요!
    

 
[서울포스트 포토] 층층이 까치집을 이고 있는 메타세콰이어 는 어디에 있어도 중력을 거슬러 수직으로 서서 살아간다

  게시판모음

서울포스트
 
뉴스소개 | 광고제휴 | 이메일구독 | 공지알림 | 개인정보보호 | 기사제보

신문등록: 서울 아00174호[2006.2.16, 발행일:2005.12.23]. 발행인·편집인: 양기용.
서울시 중랑구 겸재로 49길 40. Tel: (02)433-4763. seoulpost@naver.com; seoulpostonline@kakao.com
Copyright ⓒ2005 The Seoul Post. Some rights reserved. 청소년보호책임자: 양기용.
서울포스트 자체기사는 상업목적외에 전재·복사·배포를 허용합니다.
Powered by Newsbuil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