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감성의 고향 하동 화개, 악양 평사리, 섬진강 송림
-SPn 서울포스트, 나종화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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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의 정기가 흐르는 섬진강이 옛 모습을 되찿고 있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20110807 세상을 향한 넓은 창 - 서울포스트 나종화 |
여행을 통해 나를 RESET 하기 위해서는...
1. 혼자 떠날 것
2. 아는 곳 가지 말고, 아는 사람 만나지 말 것
3. 모험을 피하지 말고 친해질 것
4. 마음으로 다가 설 것 ( 카메라 보다 먼저)
몇 년 전까지 이 원칙을 고수하면서 일년에 한번씩이라도 짧게는 4~5일, 길게는 열흘씩 여행을 다녀오곤 했었다. 그걸 통해서 내 인생에 무슨 득이야 있었겠는가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데는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최근 들어서 점점 안락한 여행을 추구하게 되고 사실 그런 개고생이나 다름 없는 여행을 나도 모르게 회피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블로그를 하게 되면서 블로그가 주가 되고 이제 여행이 부수적인 것으로 전락한 감마져 든다.
렌턴에 의지한 채 홀로 낯선 지방의 시골길을 걷던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 제각에서 하룻밤을 묵어가던 그 용기가 지금도 내게 남아있을까.
태백준령 고냉지 임도에 차를 세우고 불타는 석양을 바라보며 감격에 복받쳐 눈시울을 붉히던 그 감성이 한방울이라도 내 가슴에 남아있을까.
다른 방법으로 마음의 RESET을 시도 했지만 신통치 않다.
그러는 동안 마음이 너무나 비만해진 것 같다.
그래서 일년에 단 한번만이라도 영혼이 이끄는데로 자유를 만끽하는 방랑자가 되어보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일년에 한번이라도 올 가을에...
물건너간 불일 폭포
엊저녁 부터 맞은편 촛대봉위로 먹장 구름이 몰려오더니 아침이 되자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혼자 몸이라면 오히려 좋아라 하며 우의를 걸치고 쌍계사 뒷길을 걷겠지만 편안한 휴식을 더 좋아하는 일행들에게 물어보나 마나다. 어제 오후부터 뭐하나 제대로 되어가는 것이 없다.
그래서 하동을 여행하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다행히 아내나 친구 내외나 하동은 초행길이나 다름없으니 식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화개장터
쌍계사에서 화개천을 끼고 내려가면 섬진강과 맞닿아 있는 작은 소도시가 화개다.
화개는 전라도 광양.구례 경상도 하동이 연해있고 지리산과 섬진강을 끼고 있는 화개는 특별한 곳으로서 옛 날엔 이곳에 큰 장이 섰다고 한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십리벗꽃길의 출발지로서 섬진강 은어회를 맛볼 수 있는 음식점들이 줄비하게 늘어선 관광지로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조영남씨의 대표곡 화개장터라는 노래로 더 유명해졌다.
옛 화개장터 건너편에 화개장터를 복원시켜 놓아 음식점과 약초를 파는 가게가 줄비했지만 옛 향기는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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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진강과 화개천의 합수점, 옛날에는 남해에서 해물을 싣고온 돛배로 북적였을 것이다.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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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토지의 배경 하동 악양
악양은 지리산의 준령이 섬진강을 향해 뻗어내리다가 두개로 갈라진 사이에 있는 길이는 8 km, 폭이 4 km 에 달하는 너른 들녁으로 누가 보아도 편안함이 느껴지는 길지(吉地)이다.
박경리씨 소설 [토지]의 배경이되는 이곳 평사리에 예전 드라마 [토지]촬영 당시 원형 그대로 만들어진 최참판 댁을 비롯한 세트장이 지금은 수많은 탐방객들이 방문하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탐방객중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진짜 최참판댁으로 착각하고 있는데 박경리씨가 우연히 이곳을 지나다가 자신이 구상하는 소설의 배경으로 삼았을 뿐 소설속 평사리와 이곳 평사리는 사실상 완전히 다른 곳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리가 워낙 탄탄하여 나 역시 그 당시 이곳에 실제로 최치수와 용이 윤보아제와 별당아씨와 세침떼기 서희가 살고 있었을 것으로 믿고 싶다.
현재 토지 촬영지 건너편 마을인 정동리 조부자댁을 실제 [토지] 모델로 삼았다는 설도 있으나 토지의 시대적 배경이었던 한말엔 어느 고장 대갓댁 마다 [토지]와 유사한 얘기꺼리들이 있었으니 이런 보편적인 사건들을 가상의 최참판댁을 중심으로 박경리씨의 탁월한 문학성으로 엮어나갔기 때문에 사람들의 뜨거운 공감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20세기에 집필된 소설중 최고의 걸작 한편만 들라면 나는 서슴없이 [토지]를 선택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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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포스트 |
박경리씨의 토지를 두번 읽었다.
한번은 중학교 3 학년 무렵에 한번 스믈 서너살 무렵에 또 한번 읽었다.
1960년대 중순까지 가문의 좌장 역할을 하고 계신 큰 할아버지께서 살아계셨고 일가들이 동네의 한 울타리안에 있는 각각 다른 집에서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에 봉건적 잔재가 물씬 풍기는 집안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할머니들과 아짐들로 부터 100년도 넘게 전해져 내려오는 집안의 온갖 은밀한 얘기들을 지금까지도 줄줄 꾀고 있어 [토지]의 씨줄을 구성하는 수많은 인물들과 날줄을 구성하는 무수한 얘기꺼리들 그리고 그것이 엮어내는 나이나믹한 스케일이 내게는 그다지 생소하지가 않다.
만약 내게 박경리씨 같은 문재(文才)가 있었다면 만사 때려치고 한말에서 광주민주항쟁에 이르는 기간동안 우리 집안에서 일어난 얘기를 엮어 소설을 집필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한 소설의 제목은 [ 농민 ]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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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사리 무딤이 들의 쌍 소나무와 섬진강, 윤씨 마님이 서희의 손을 잡고 논길을 걷던 장면이 선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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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 용이 마음은 월선이 꺼나 다름없는데 강천댁처럼 악착스럽고 드세지 않을 여자가 어디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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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생 최치수와 김환의 어머니라는 업보를 가슴에 묻고 살아온 전형적인 양반가의 마님이었던 윤씨가 거쳐하던 안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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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동군에서는 고장에서 존경받는 어르신을 명예 최참판으로 임명하여 이곳을 찾는 어린이들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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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다. 담장 넘어 굽이치는 섬진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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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환이 의붓형수 별당아씨의 손을 잡고 지리산으로 도망치던 그 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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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는 대숲을 보고 갓 시집왔던 시절을 얘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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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치수 그에게 삶이란 무슨 의미였을까. 적어도 자신의 소유였던 평사리의 저 광활한 농토에 의미를 두고 살진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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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사리를 굽어보고 있던 소나무 한그루가 유난히 눈에 띈다. 곧고 외로운 최치수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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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백년된 소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평사리 솔밭, 여기엔 또 어떤 얘기가 서려있을까. |
문득 답답해졌다.
오랜만에 평사리 들녁을 걷고 싶었고 모래톱에 앉아 물끄러미 맑고 푸른 섬진강을 만나고 싶었다.
그 대신 일행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 세사람 차에서 기다림...ㅎㅎ) 평사리 앞에 조성된 수백년된 아름드리 소나무 들이 서있는 송림을 잠시 거니는 것으로 그런 갈증을 다소나마 해소했다. 나는 여행을 할때 알려진 곳을 찾아가는 것보다, 평범한 산하에 숨쉬고 있는 아름다움을 만나는 것에 에 의미를 둔다.
하동 송림
하동읍 섬진강변에 있는 송림을 찾았다.
솔향이 코끝이 간지러웠다.
그곳에 가득찬 피톤치드 때문일까.
어제 이후로 다운된 기분이 되살아났다.
우린 느긋한 마음으로 그늘에 앉아 이번 여행에 관해 얘기꽃을 피웠다.
결론은 칠선계곡의 서늘한 바람이 이번 여행이 압권이었지만 하동에서의 하루도 좋았다는 것이다. 송림 인근에 있는 식당에서 하동의 명물 제첩 회덮밥을 맛있게 먹고난 다음 2 박 3 일간의 지리산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수해 지역 주민을 돕는 길은 그곳으로 여행을 가는 것
우리가 이번 여름 여행 돌아온 다음날 부터 함양.산천.구레.남원.하동 지리산 일원이 기록적인 폭우로 유례 없는 피해를 입었다. 우리가 다녔던 낯익은 길도 산사태로 허물어져 있는 것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았다.
그런 마당에 블로그에 기행문을 싣는다는 것이 맘이 편하지는 않다. 부디 조속히 복구가 끝나고 피해 주민들이 하루빨리 제자리를 찾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곳 주민들을 돕는 최선의 방법은 그곳으로 여행을 하는 것이다. 올 가을에 한 행보 더 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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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종화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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