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인수봉을 바라보며 신선놀음하다
-SPn 서울포스트, 나종화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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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수봉을 보면 힘이 솟는다. 태양전지판처럼 마음의 판을 활짝 펼쳐 그 힘을 얻는다. ⓒ세상을 향한 넓은 창 - 서울포스트 나종화 |
6월 18일 토요일 - 우이능선길
더위가 절정에 이르는 8월 초순경에나 어울릴법한 불볕더위라는 표현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요즘이다.
계절감각의 상실은 더이상 이상현상이 아닌 자연현상으로 자리잡았다.
이럴땐 따가운 햇살이 내리쪼이는 바위능선 보다는 시냇물 졸졸거리는 계곡길이 더 땡기는 산행 코스다.
그러나 고등학교 2 학년때부터 산행을 함께 했던 친구와 함께 우이능선으로 해서 영봉으로 들어온 것은 인수봉이 한 눈에 바라보이는 한적한 기슭에서 신선 놀음을 하고 싶어서였다.
당분간 이런류의 산행을 즐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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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0년에 창건한 어린절(?) 용덕사, 석굴에 자리잡은 산신각이 일품 ⓒ서울포스트 |
짝패
12반까지 있는 고등학교에서 1 학년부터 3학년까지 줄곳 같은 반이었던 확률상으로도 쉽지 않은 인연에다 마음까지 딱 맞으니 우린 짝패임에 틀림없다.
학교를 졸업하고 비록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학창시절이나 지금이나 우린 짝패다.
전도양양한 중견 건설업체를 경영하면서 시대를 가슴에 품는 지사로서 쉼없이 공부하고 수양하는 선비로서 마치 전설의 주인공처럼 살아온 내 친구가 늘 자랑스럽다.
건설회사를 정직하게 경영한다는 것이 이 나라에서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친구는 그런 장애를 거침 없이 극복하면서 정도경영의 성공신화를 써내려가는가 싶더니 결국 시류의 격랑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타의에 의한 20년만의 휴가가 어찌 달콤하랴만 야인(野人)의 길로 접어든지 한달 남짓 그 동안 맘 놓고 다니지 못했던 산을 만나느라 여념이 없는 친구는 구리빛 얼굴로 나타나 지리산과 설악산과 두타산의 산행기를 신나게 들려주었다.
역시 내 짝패 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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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지 않는가. 도봉에서 파도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저 웅혼한 기운이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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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야. 보고자 하면 보이고 가고자 하면 갈 수 있잖냐. 저 인수봉처럼 ⓒ서울포스트 |
산 기운
블로그에다 풍수니 산기운이니 하는 소리를 가끔 늘어 놓는것을 보고 어떤이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하더라.
나는 공기.중력.자기장 뭐 이런 물리적으로 해석되는 힘말고 잣대를 드리댈 수는 없지만 규정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힘이 자연계에 확실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굳게 믿는 사람이다.
아니라면 내가 이 포스팅을 쓰고, 블로그에 들어가 댓글을 다는 행위가 뇌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전기적 신호에 의한 생물학적 법칙에 기인하는 것이고 내가 자식을 사랑하고, 꽃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느끼는 모든 생명현상이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 유기체의 작동에 불과하단 것인가.
물리적으로 측량할 수는 없어도 우리를 존재하게 하고, 사랑하게 하고, 신을 깨닫게 하는 이 행성에 충만한 형이상학적인 힘을 뭉그뜨려서 동양에서는 기(氣)라고 한다.
평상시에는 그걸 모르고 살다가 산에 들면 뚜렷하게 느끼기 때문에 난 그 힘을 산기운이라 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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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넌 어디로 가니, 푸르른 산천을 외롭게 걷는 코끼리 ⓒ서울포스트 |
산기운이 역동하는 영봉과 삼각봉
암흑같은 북쪽과 대낮처럼 밝은 남쪽이 확실하게 대비되는 한반도의 야경을 보여주는 위성사진은 잘사는 남한과 못사는 북한을 시각적으로 비교하기 위한 목적으로 곧잘 인용된다.
그걸 보고 있으면 다른 의미에서 절망감이 든다.
우리땅에는 사람의 손을 타지 않고 온전하게 보존된 광활한 자연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대간과 정맥을 통해서 온 나라로 정기가 뻗어 내려간다는 조선시대의 산경이론도 이젠 수정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나마 다른 국토에 비해 개발의 폐해가 덜한 한북정맥은 백두산에서 시작된 흐름이 끊기지 않아 일급수같은 산기운을 유지하고 있는것 같다.
세계사에도 유래가 드물 정도로 600년 동안 도읍을 유지하면서 아시아에서도 손꼽히는 중심도시로 부상하고 있는 수도 서울의 성장배경도 여기에 있다고 믿는 이들이 많다.
우이능선은 그 산기운이 서울을 향해 들어오는 파이프라인이다.
육모정에서 영봉으로 향하는 것이 산기운의 순방향이다.
산행을 할때 순방향으로 진행해야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고 한다.
우이능선으로 들어오는 기운이 영봉에서 세차게 쏟아져 내려 하루재에서 과협하고(에너지의 응축) 회룡(에너지의 발산)하여 인수봉과 백운대 만경대 즉 삼각봉으로 솟구친다. 풍수적으로 이보다 역동적인 곳도 드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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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마도 이기고,재선충도 이겨낸 소나무의 질긴 생명력 그것이 산기운이다.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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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겁의 바다속을 잠행중인 잠수함 ⓒ서울포스트 |
인수봉을 바라보며 신선놀음
영봉 기슭에는 인수봉과 마주할 수 있는 좋은 자리가 여럿 있다.
마침 예약이라도 해 놓은 듯 그중 최고의 명당자리가 말끔하게 비어 있었다.
소나무 그늘이 따가운 햇살까지 가려주고 있으니 이를 일러 금상첨화라 하지 않던가.
우린 그곳에 자리를 펴고 앉아 얼음이 둥둥떠다니는 막걸리를 한 순배씩 돌리면서 건너편에 우뚝 서 있는 인수봉과 인사를 나누었다.
깍아지른 듯한 절벽 꼭대기 소나무 아래 두 신선이 앉아 있는 풍경은 동양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테마다.
누군가가 멀리서 우릴 바라 보았다면 딱 그런 모습이었을게다.
풍진 세상 잠시라도 떨쳐버리기에 신선놀음만한 것이 있으랴.
우린 그 자리에서 시간을 잊고 놀았다.
원래 신선놀음이라는 것이 도끼자루 썩는 줄도 모르는 것이니... (2011/06/21, http://ecotri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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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고 굵은 영봉의 소나무를 세월도 차마 범하지 못하였더라. 그 아래 사는 산 나리는 더욱 붉고. ⓒ서울포스트 |
(나종화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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